Wednesday, November 24, 2021

마이클

 


*영어 인터뷰 번역본은 문어체를 사용했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마이클 피터슨이다. 나이는 52세이고, 결혼 한지 약 20년 됐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그 당시 그랬어야만 했었다 

-후회한 적 있나요? 

때때로 후회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솔직히 느낌이 전혀 없다. 

-출국 전날 기분이 어땠나요? 

위와 같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냥 평범한 삶이다. 

-현재 감정 상태는 어떻습니까? 

보통이다. 

-언젠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있나요? 

해외로 나갈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한국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 

-한국의 영주권을 받고 싶으신가요? 

한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고국이 가장 생각나는 때는 언제인가요? 

미국에서의 취업 기회를 찾을 때만 생각한다. 

-한국에 소속감을 많이 느끼시나요? 

별로 느끼지 않는다. 그나마 소속감을 느꼈던 순간은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이다. 

-미국과 한국의 일상 중 가장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성인이 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해외에서 보냈다.처음에는 유럽에서, 그 다음에는 아시아에서 보냈다. 그래서 어느 두 나라를 특별히 비교하기가 어렵다. 

-고향이 그립거나 심리적 안정감이 필요할 때 주로 무엇을 하나요?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올해 미국으로 돌아간다면 잠시 가족들 방문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고향에 가지 않을 것 같다. 

-고국 공동체가 있나요? 

없다. 

-한국이 좋나요? 

나쁘지 않다. 

-한국의 좋은 점 혹은 나쁜 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특별히 생각해 본 적 없다.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은 나의 가족이다. 

-한국말을 잘하시나요? 

말하기와 듣기는 그다지 좋지 않지만 일 때문에 한국어로 읽고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는 어떻게 배웠나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치 안에서 배웠다.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없다. 

-한국에서 문화 활동을 즐기십니까? 

업무의 일환으로 많이 참석해야 하고 때로는 문화 활동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 그 사이에서 문화 활동을 즐긴다.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미국에서 괜찮은 직업을 찾는 것이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정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나는 어떤 «사물»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그나마 가져온 것 중에 중요한 것은 프리랜서 편집 및 작문 작업을 위한 참고 자료와 미국에서 떠나올 때 가져온 재킷이다

크래그




 *영어 인터뷰 번역본은 문어체를 사용했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크레이그 메이슨이다. 미국에서 왔고, 한국에 온 지 14년 되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어서 이주를 왔다.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미국을 떠나서 기뻤다. 한국에 오기 전에 유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당시, ‘나는 떠나고 싶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었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한국에 도착했을 때, 새 아파트의 침대 위에 앉아서 약 10분 동안 나는 ‘내가 무엇을 했는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 모든 것을 재정렬하고는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나는 여전히 이곳에 사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을 계속해서 전진할 것이다. 

-후회한 적이 있나요? 

후회한 적은 없다.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있나요?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고 싶다. 

-한국의 영주권을 받고 싶으신가요? 

영주권을 받고 싶지만 그간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고, 지금까지는 매년 비자 갱신이 쉬웠다. 다시는 미국에서 살 생각이 없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싶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연락을 유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미국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는 아주 다른 곳으로 느껴진다. 

-고향이 그립거나 심리적 안정감이 필요할 때 주로 무엇을 하나요? 

미국이 그리운 건 아닌데, 심리적 안정이 필요할 땐 보통 매운 피자를 먹고, 와인도 마시고 음악을 듣거나 스케이트보드 영상을 본다. 

-한국에 소속감을 많이 느끼시나요? 

여기에 온 첫해에 깊은 유대감을 느꼈던 친구를 만난 후 정말로 한국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만남은 내가 이 나라에 머물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다.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한국에서 가끔 인종차별을 느끼긴 하지만 심각하지도 않고, 웃지 않을수도 없다

-미국과 한국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여기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내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집값이 너무 비싸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또한 미국에서는 모든 것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 도시를 가로질러야 하고, 이동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더 비싸다) 미국에도 지하철과 택시가 있지만 훨씬 더 비싸고 멀리 떨어져 있다. 

-한국이 좋나요?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의 좋은 점 혹은 나쁜 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의 좋은 점은 주변 사람들에게 매우 개방적이며 원하는 재료나 자료를 찾기가 매우 쉽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매우 훌륭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점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말을 잘 하시나요? 

한국어를 하지만 잘하지는 못한다.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다. 

-한국어는 어떻게 배웠나요?

한국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자주 쓰기 연습을 하며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에서 문화 활동을 즐기시나요? 

인디밴드 콘서트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종종 전시회를 보러 간다. 

-고국 공동체가 있나요? 

여기서 만나는 미국인은 부산에 사는 작가뿐이다. 책과 글쓰기에 그토록 열정적인 사람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현재의 감정 상태와 삶은 어떤가요? 

이곳에 와 산 이후로 그저 행복했다. 나에게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가장 중요하고, 행복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 한국어와 영어로 다양한 작문 작업을 하고 있는데 12월에 좋은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앞으로 그림과 글쓰기를 계속할 생각이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특별히 가치 있는 물건들은 가져오지 않았다. 처음 왔을 때 오기 전부터 많이 쓰던 낡은 타자기를 가지고 왔는데 별로 귀한 것도 아니고, 그 이후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 외에는 2년 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가져온 세 장의 드뷔시(Debussy) LP 세트가 소중하다

Sunday, November 21, 2021

카트리니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카트리니샤입니다. 네팔에서 왔구요. 나이는 27세에요. 한국에 온 지 거의 6년이 다 되었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결혼하고 한국으로 왔어요. 결혼하고 1년 정도 네팔에 있는 세종학당에서 기본 한국어를 배우고, 그다음에 한국으로 왔어요.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네팔에서 만났어요. 고모님도 한국 사람이랑 결혼을 하셨고, 제 남편도 고모님이 소개해 주셨어요. 남편이 네팔로 와서 만났어요. 남편은 키가 작아서 드라마처럼 멋있지 않았어요. ‘한국 사람 아닌 것 같은데…’한 게 첫 느낌이었어요. 초반에는 앱으로 대화했어요. 그러다가 결혼 결심하고, 한국으로 왔어요. 

-결혼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동기는 고모가 한국 사람이 좋다고 했고, 네팔보다 생활이 편하다고 했어요. (네팔과 한국의 시차가 얼마나 있나요?) 인천에서 비행기로 6시간 걸리고, 3시간 정도 시차가 있어요. 통화하는 데 무리 없어요.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고국 떠날 때 무섭다는 생각을 했어요. 새로운 환경과 시부모님을 만나는 것이 겁났고, 무서웠어요. 한국과 시댁 문화가 달라요. 언어가 다르니 표현을 제대로 못할까 봐 무섭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아이 낳고 나서는 (4살이에요) 괜찮아졌어요. 영주권 따고 사회통합프로그램 거치고 지금은 좋아요. 출산했을 때 엄마가 왔었어요. 사실 코로나 이전에는 네팔에 자주 갔었어요. 그리고 엄마께서 제가 먹고 싶은 것도 가져오신 적도 있었어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당시에 남편이 거제도에서 있었어요. 조선소에서 일했어요. 다문화 센터에 네팔 담당 선생님이 없어서 힘들었어요. 앞으로는 한국어 능력시험 보고, 이중언어 코치로 일하고 싶어요. 사투리는 어렵지만 네팔어와 순서가 같아서 수월해요. 시댁에서 쓰는 말은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네팔과 한국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고모님 말씀처럼 생활이 많이 편해요. 설거지와 밥 모두 기계로 해서 편해요. 네팔에서는 물도 끓여서 썼는데 여기는 정수기가 있어서 편해요,

-고모님은 한국에서 자주 만나시나요? 

고모님은 아산에 사세요. 고모님이 시부모님과 같이 사실 때는 만나기가 힘들었어요. 지금은 고모님의 시부모님 돌아가셔서 일도 하시고 하세요. 

-한국에서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저는 살면서 스스로가 외국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해요. 사람들이 편하게 해주고, 어린이집 학부모님들이 저를 부러워해요. 외국어를 배우려면 힘든데 우리 아이는 저절로 배우게 돼서 부럽다고 해요. 어린이집에서 강사로 일해요. 그 덕분에 한국 사회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먼저 네팔 언어를 가르쳐 주는 일을 하니까 좋아요. 남편과 언어 때문에 오해가 생겼을 때 전에는 먼저 미안하다고 많이 했지만 지금은 제가 이겨요. 언어를 알고 오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음식은 잘 맞으시나요? 

식료품 구하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좋아요. 네팔 식당도 대구에 많아요. 네팔의 유명한 음식은 카레와 난이에요. 네팔에는 냉장고가 없어서 그때그때 해야 해요. 여기선 반찬 해서 냉장고에 보관하니 좋아요. 

-명절 때는 어떤가요? 

명절 때 같이 음식 해요. 명절 음식 맛있어요. 젓가락질을 잘 못해서 힘들었어요. 네팔에선 손으로 먹거든요. 그래서 아기 젓가락을 사서 연습했었어요. 혼자 있을 때는 손으로 먹었어요. 음식이 많이 달라서 힘들게 배웠어요. 

-네팔도 커피가 유명한가요? 

네팔에는 차가 유명해요, 밀크티. 

-네팔에서 산에 많이 가셨나요? 

네팔에서는 산 넘어서 물도 길어오고, 놀러 가는 느낌으로 많이 가요. 한국산은 길이 잘 나있지만 네팔은 길이 없어요. 자연 그대로 있어요. 

-네팔에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나요? 

네팔에서 관광하고 싶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안 계셔서 관광을 많이 못 했어요. 한국 사람들도 여행 가면 트래킹이나 패러글라이딩을 하는데 저는 안 해봤어요. 그래서 해보고 싶어요.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다문화 센터 강사 수업하고, 한의대에 가고 싶어요. 대구이주여성에게 공부시켜주는 곳이 있거든요. 네팔에서 서류 준비해서 하고 싶어요. 대구시에서 50% 다문화 센터에서 50% 지원해 준다고 해서 좋은 기회 같아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네팔의 국기와 아기 돌잔치 전통 의상입니다. 네팔 국기는 고향에 가고 싶을 때 가끔 국기를 꺼내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고는 합니다. 네팔의 국기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각형 모양이 아닌 위아래 양쪽으로 삼각형 두 개를 놓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파란색 테두리는 평화를 의미하며, 빨간색은 네팔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아기 돌 때 입는 전통의상은 제 딸에게 엄마 나라의 문화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레송송마이



*통역사와 함께한 인터뷰는 문어체를 사용하였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레송송마이다. 나이는 스물한 살이고, 베트남에서 왔다. 한국에 온 지 2년 반 되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한국 남편을 만나서 오게 되었다.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회사로 소개받았다. 첫인상이 엄청 좋았다. 하지만 남편은 나를 별로 안 좋아했다. 내가 ‘만나보면 좋을 거다’라고 했다. 그렇게 만나다가 결혼까지 했다. 내가 외동딸이라 남편 생각에 성격이 까다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엄청 슬펐다. 비행기 탈 때 울었다.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었다. 지금은 영상 통화를 자주 한다. 지금은 생활하기도 괜찮다. 슬프기도 하지만 남편이 잘 해준다.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남편은 힘들어할 것 같다. 

-고향이 생각날 때는 언제인가요? 

거의 매일 밤, 자기 전에 생각난다. 사진 보고 좀 울기도 하고 그런다. 그리고 남편이랑 얘기를 많이 한다. 

-출산 때 가족이 오셨나요? 

부모님이 내가 태어나고 6개월 때 이혼했다. 출산 때 혼자 있었다. 좀 힘들고 외로웠다. 작년 7월이라 코로나 때문에 친구도 못 왔다. 지금도 남편은 출장을 자주 간다. 

-떠나올 때 가져온 물건이 있나요? 

그렇다. 가지고 온 물건들 많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시나요? 

맛있다. 

-베트남 공동체가 있나요? 

대구에 베트남 친구는 많지 않다. 그래서 다문화 센터에 자주 온다.

-한국의 좋은 점 혹은 나쁜 점이 있나요? 

안 좋은 점은 많이 없다. 외국인이라고 하면 다르게 본다. 그건 불편하다. 

-영주권이 있으신가요? 

아직 없다. 하지만 취득 계획은 있다. 지금은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올해 계획이 있나요? 

특별한 계획은 없다.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우선 한국어를 잘 하고 싶고, 국적취득도 하고 싶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이름이 적혀 있는 생일 기념 봉투와 베트남 돈이 들어있는 지갑이다. 베트남에서 영어선생님한테 받은 선물인데 제가 살면서 어려운 일 혹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이 나에게 좋은 조언을 해주셨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선물이다.

호레호앙안



*통역사와 함께한 인터뷰는 문어체를 사용하였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호레호앙안이다. 베트남에서 왔고, 서른한 살이다. 한국에 온 지 3년 되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남편을 사랑해서 올 수 있었다. 남편과 연애해서 결혼했다. 남편이 베트남으로 여행을 왔고,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다. 남편과 소통은 영어로 했다. 

-고국을 떠났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베트남에 갔다가 다시 왔다. 한국으로 올 때 기뻤다. 남편을 많이 사랑해서 좋았다. 

-결혼 후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결혼 전에는 내 생각을 먼저 했는데 결혼 후에는 남편과 가족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베트남에서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했었는데 한국에서는 일도 안 하고, 가족도 없어서 처음에는 많이 슬프고 힘들었다. 고국에서처럼 자유롭지 못해서 새가 날아다니지 못하고,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어떠신가요? 

한국말이 어렵다. 소통이 힘드니 생활이 조금 힘들다. 그렇지만 지금은 친구도 생기고, 남편이랑 유튜브로 음식 만드는 것을 업로드하고 있다. 

-고국이 생각날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가족과 매일 전화한다.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나요? 

열 살 차이 나는 친한 동생이 있다. 한국에서 만나서 친하게 지낸다. 한국에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가족이 있어서 자주 만나 친하게 지내기는 힘들다. 다른 가족들은 베트남에 있다. 

-한국에서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요? 

한국에서의 실제 거주 기간은 1년 반 정도이다. 코로나 때문에 베트남에 오래 있었다. 한국에서는 집이 제일 편하다. 

-한국에서의 현재의 삶은 어떤가요? 

집안일을 하고, 유튜브를 만든다. 요리 촬영을 3개월 정도 했다. 재미있다. 지금은 친구랑 가족이랑만 공유한다. 운동도 하고 있다. 

-유튜브 편집하는 것 어렵지 않나요? 

원래 인테리어 디자인을 했기 때문에 유튜브 편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국이 좋으신가요? 

한국 음식이 좋다. 된장찌개를 좋아한다. 많이 고민하는 편이 아니라서 생활은 편하다. 

-올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한국어 공부하는 거 말고는 별다른 계획이 없다.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한국에서 인테리어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언어가 된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친정어머니가 남편에게 선물한 베트남의 유명한 장소들이 그려진 그릇이다. 일주사(One Pillar Pagoda, 뭇꽃사원), 하롱베이(Ha Long Bay), 호안끼엠(Hoan Kiem) 호수 등이 그려져있다. 호아 람(Hoa Lam)이라는 유명한 도자기 제품인데 남편이 굉장히 좋아해서 접시로 쓰지 않고 책장에 전시해 두었다.

전효우



*통역사와 함께한 인터뷰는 문어체를 사용하였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전효우다. 나이는 36세이고, 중국에서 왔다. 한국에 온 지 4년 정도 되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남편이 중국인인데 일 때문에 한국에 있어서 따라오게 되었다. 한국어는 다문화 센터에서 배우고 있다. 

-한국으로 떠나올 때 기분이 어땠나요? 

원래 한국을 좋아했다. 한국 드라마나 화장품 등을 좋아했다. 그래서 처음에 호기심이 많았다. 외국으로 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힘든 점도 있었지만 지금은 긍정적이다. 모든 것이 좋다. 

-고향이 그리울 때나 가족이 그리울 때는 언제인가요? 

코로나 이전에는 왕래가 많았지만 지금은 못 가서 힘들다. 중국에 자녀가 있다. 7살이다. 외할머니가 키워주시고 계신다. 영상통화를 자주 한다. 

-고국이 그리울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남편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집이 그립거나 슬프거나 하지는 않는다. 집에서 중국 음식도 많이 해먹는다. 다른 이주여성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싶으신가요? 

영주권은 나중에 취득하고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싶다. 한국 국적 취득은 아직 생각 안 한다. 

-고국을 떠나올 때 가져온 소중한 물건이 있나요? 

나는 한족이라 한복을 안입고, 치파오를 입는다. 남편은 조선족이라 한복을 입는다. 원래 잘 입지 않지만 한국에 들어올 때 치파오를 가져왔다. 

-한국이 좋으신가요? 

처음에도 좋았지만 지금은 더욱 좋다. 생활도 편하다.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언어가 안돼서 못 알아들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안 좋은 점이나 인종차별은 별로 못 느꼈다.코로나로 밖에 많이 못 나가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중국 공동체가 있나요? 

그렇다, 있다. 

-올해의 계획이 있나요?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려고 한다. 아이를 데리고 올 생각도 있다.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중국으로 가서 살 수도 있다.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이 좋으면 계속 살 수도 있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옥팔찌와 오브제는 아니지만 남편이다. 엄마가 20년 전에 비싼 돈으로 옥팔찌를 두 개 사셨는데 지금까지도 엄마와 하나씩 팔에 차고 있다. 지금은 내가 한국에 있지만 항상 엄마가 곁에 있는 느낌이다

양링



*통역사와 함께한 인터뷰는 문어체를 사용하였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양링이다. 46세이고, 중국에서 왔다. 한국에는 작년 6월에 왔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결혼은 중국에서 한 지 오래되었고, 중국에서 계속 살다가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오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중국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중국에서 유명한 인테리어 소품 체인점을 운영했었다. 중국 청도 지하철의 화장실 공사도 했었다.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남편은 중국에서 만났다. 둘 다 골프를 좋아했다. 남편을 골프장에서 만났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중국과 한국은 모든 게 달랐다. 많은 것에서 차이가 있었다. 처음에 걱정이 많이 되었고, 후회도 했다. 중국에서는 중산층으로 잘 지냈는데 한국에 오니 저소득층으로 살게 된 느낌이다. 남편이 잘 해줘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남편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댁에서는 중국어로 소통을 하시는 편인가요? 

중국어로 얘기하고, 한국어는 지금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 계속 살 계획이신가요? 계속 한국에서 머물고 싶다. 

-지금의 감정은 어떠신가요? 

지금은 처음보다는 괜찮아졌다.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가요? 

중국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한국에서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남편이랑 같이 잘 살고 싶다.

 -고국에서 가지고 온 소중한 물건이 있으신가요? 

코로나 때문에 급하게 한국에 오게 되었다. 골프를 좋아하지만 골프채는 가져올 수 없었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가족사진이 들어있는 중국의 고모님이 쓰신 시집과 중국 윈난성의 부와 평안을 대표하며 귀신을 내쫓는다는 말이 있는 행운의 장식품이다.


바이레라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바레리아입니다. ‘레라’라고 불러요. 러시아에서 왔고, 29세입니다. 한국에 온 지 7년 되었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2014년에 한국에 왔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공부하러 왔다가 결혼하게 되면서 길게 체류하게 되었어요. 러시아에는 결혼 후 신혼여행으로 결혼 5년 차에 방문했어요. 졸업 후 관광학과 공부를 하고, 영남대학교에서 의료관광 관련 일을 했어요.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남편이 러시아에 고려인 관련 봉사활동으로 와서 알게 됐고, 그 후 제가 한국에 공부하러 오면서 연애가 시작되었어요. 

-한국으로 떠나올 때 기분이 어땠나요? 

처음 한국에 올 때는 설레고 신났어요. 지금은 좋고 행복한데 출산 때 엄마가 멀리 있어서 외로웠어요. 남편이 부모와 친구 역할을 다 해주고 있어요. 지금은 출산 4개월 차로 일을 쉬고 있어요. 

-고국이 가장 생각날 때는 언제인가요? 

특정한 어떤 때가 있기보다는 문득문득 그리워요. 엄마랑 같이 가고 싶은 곳을 여기저기 생각해두었어요. 

-고향이 어디인가요? 

볼고그라드(Volgograd)라는 도시가 고향이에요. 직항으로 가려면 10시간 정도 걸려요. 한국 음식이 입에 맞아서 러시아 음식은 잘 하지 않는데, 고국의 특별한 음식은 러시아에서 가족들이 보내주곤 했는데 코로나로 최근에는 그 부분이 아쉬워요. 

 -고국이 그리울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엄마와 영상통화를 해요. 출산 때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시차가 6시간이 나 러시아가 새벽 2시인데 전화했어요. 

-러시아 공동체가 있나요? 

작은 모임이 있었어요. 아이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쳐주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없어요. 

-한국에 소속감이 들 때는 언제인가요? 

5년차 때부터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옷 입는 스타일도 달랐는데 조금씩 한국 스타일로 맞춰 갔어요.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더 소속감이 들고 사람들이 혼혈이냐는 얘기를 종종 했어요. 지금은 출산으로 일은 쉬고 있어요.    

-러시아와 한국의 일상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은 공원이나 건물 시설, 공중 화장실 등이 잘 되어 있고, 식당에 반찬이 많아서 너무 좋아요. 맛에 대한 표현도 한국은 다양해요. 전라도 식당에 꼭 가볼 계획이에요. 

-한국에서 좋아하는 공간이 있나요? 

집이 좋아요. 내 집이라서요. 그리고 집 근처 공원에 아기가 울 때 바로 나갈 수 있어서 좋아요. -한국의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모든 시설이 잘 되어있어요. 안 좋은 점은 친절한 듯하면서 부정적인 거 같아요. 제가 외국인이어서 시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하셨었어요. 지금은 아주 좋아요. 

-영주권을 가질 계획이 있나요? 

영주권을 가질 계획이 있어요. 영주권을 취득하게 되면 러시아 시민권은 포기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언젠가 고국에 돌아갈 생각이 있나요? 

이젠 러시아에 돌아가서 못 살 거 같아요. 20대에 한국에 와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이곳이 좋아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올해는 운전면허를 따려고 했는데 아기가 어려서 당장은 먼 미래 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요. 올해 제일 하고 싶은 건 면허 따는 것이에요. 소윤이(아기)가 외로울 거 같아서 둘째는 꼭 낳고 싶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은으로 만든 딸랑이와 러시아에서 가져온 티포트 세트입니다. 딸랑이는 제가 러시아에서 아기 때 가지고 놀던 딸랑이인데 제 딸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찻잔세트는 러시아에서 결혼할 때 찻잔세트를 선물하는 문화가 있는데 결혼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라이띠따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라이띠따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왔고, 서른다섯 살이에요. 한국에 온 지 9년 되었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결혼을 하면서 오게 되었어요. 저는 결혼을 늦게 한 편이에요. 캄보디아에서는 15-17세에 결혼을 많이 해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많이 힘들었어요. 한국말도 모르고 생활도 잘 몰라서 힘들었어요. 다문화 센터에서 많이 가르쳐 주셔서 감사했어요. 

-캄보디아 공동체가 있나요? 

예전에는 많이 만났어요. 캄보디아 음식도 먹고, 정보도 교환하고 아이들과도 같이 많이 만났어요.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화장품을 파는 일을 하고 싶어요. 캄보디아 식당도 열고 싶어요.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고 싶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한국어로 번역이 된 캄보디아 책입니다. 처음에 한국 왔을 때 이 책이 외롭지 않게 많은 도움이 되어주었습니다.


판티홍눙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판티홍눙입니다. 베트남에서 왔고, 24살이에요. 한국에 온 지 2년 9개월 되었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베트남에서의 일상은 반복적이에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서 오게 되었어요. 그리고 한국에 아는 친척 언니가 있었어요. 언니가 ‘한국 사람이랑 결혼 할래?’하고 물어봐서 ‘알겠다’고 대답했어요.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남편은 사진으로 소개받았고, 전화로 대화를 했어요. 남편이 베트남에 방문했을 때는 조금 다른 모습에 실망했어요. ‘결혼 안할래’하고 생각했었어요. 당시에 파파고 번역기로 소통했어요. 그런데 한 번은 컵라면을 먹었는데 그 모습이 소박해 보이고 좋았어요. 또 남편이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니 빨리 결혼 하자고 했어요. 그러다가 한달 후 결정했어요. 당시 베트남 남친이 있었지만 새로운 경험을 원했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했어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이 반복되는 삶이 싫었어요. 한 달 동안 울다가 결심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기대도 많고 설렘도 있어요. 특히 한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있어요. -적응은 잘 하셨나요? 문화적 차이가 많았어요. ‘빨리빨리’ 문화에 적응이 좀 힘들었어요. 

-아이가 있으신가요? 

아이는 한 명 있어요. 

-올해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올해 국적취득을 하고 싶어요. 면접에 꼭 합격하고 싶어요.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미래 계획 많아요. 일하고, 대학에도 입학하고 싶고요. 맞벌이를 해서 집도 사고 싶어요. 그리고 사진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예술에 관심이 많고, 만들기를 좋아해요. 사람들을 찍고 싶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베트남 전통 의상과 백만 원 정도의 베트남 돈입니다. 엄마께서 제가 경제적 독립할 수 있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국했을 때 주신 돈입니다.

강란란

 


*통역사와 함께한 인터뷰는 문어체를 사용하였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강란란이다. 50세이고, 중국에서 왔다. 한국에 온 지 3년 정도 됐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남편이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떨어져 살다가 같이 살아야겠다 싶어서 들어왔다. 자녀는 셋이고 20년 동안 남편이 2~3개월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생활했다. 남편은 조선족이다. 

-아이들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올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처음 입국할 때는 좋은 편은 아니었다.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당시 아들만 데리고 오고, 딸 둘은 중국에 남아 있었다. 큰 딸이 며칠 전에 들어왔다. 곧 학교에 들어갈 예정이다. 둘째 딸은 아직 중국에 있다. 처음 입국 때는 아는 사람도 없고, 언어도 안돼서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다문화 센터를 다니면서 한국어도 배우고 다른 외국인분들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로 좋아졌다. 다양한 이민자분들을 만나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안도감(?)도 생기고, 마음이 풀어진 것도 있다. 

-고국이 그리울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평소에는 그럭저럭 잘 지내는데 추석이나 설날 같은 큰 명절에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어르신들도 보고 싶고 집이 그립다. 고향이 생각날 때면 중국 음악을 듣는다. 

 -한국에서 20년 이상 일하신 배우자분은 한국 사람이라고 느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그렇다. 중국 친구는 없고 주변에도 다 한국 사람들뿐이다. 외모도 다르지 않고 그냥 한국 사람 같다. 우리 남편은 한국 사람과 똑같다. 중국 반찬보다 한국 반찬을 더 선호한다. 

 -한국 요리는 따로 배우셨나요? 

다문화 센터에서 운영하는 요리 교실을 2~3년 동안 수강하면서 많이 배웠다. 

-언젠가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계속 계속 여기서 살고 싶어요. (웃음) (통역사가 아닌 강란란씨의 표현) 여러 가지로 편리하고, 교육도 중국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중국과 한국에서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중국은 교육열과 교육비가 만만치 않아서 아이들과 부모가 교육 문제로 스트레스가 많은데 한국은 그 편이 좀 더 자유로운 거 같다. 

-한국 생활에서 힘든 부분은 뭔가요? 

아직 언어가 서툴러서 한국 사람들을 많이 접하지 못해서 문화 차이 때문에 생기는 힘든 경험을 하진 못했다. 

-대구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요? 

대구 화원에 ‘사문진 나루터’에 배 타는 곳을 좋아한다. 그 외 날씨가 좋으면 어디든 나가는 거 좋아한다. 

-한국의 영주권을 취득하고 싶으신가요? 

영주권 취득은 희망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 확실히 언제 취득할지 계획은 할 수 없는 상태이다. 

-올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직장을 찾아서 빨리 돈을 벌고 싶다. 남편이 혼자 20년 이상 경제 활동을 해서 미안하고 도움이 되고 싶다. 현재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아들이 8살이라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꼭 구직을 하고 싶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중국 전통 의상과 ‘복’자가 그려진, 부를 상징하는 대표 장식품이다. 한국에 오면서 들고 왔다.

김지은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김지은입니다. 베트남에서 왔고, 본명은 부헝타이입니다. 현재 초등학교에서 베트남어 수업을 하고 있어요. 

-한국 이름은 언제 받으셨나요? 

2012년에 받았어요. 2012년에 국적을 취득하면서 한국 이름으로 바꿨어요. 남편이 만들어 줬는데, 그런대로 마음에 들어요. 친정 부모님은 부헝타이로 불러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티브이에서 한국을 보면 아름답고 좋아 보였는데 결혼하면서 오게 됐어요.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사촌동생이 한국에 있어서 소개해 줬어요. 순하고 착한 느낌이라 좋았어요. 그렇게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했어요.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기대나 설렘보다는 걱정이 많았어요. 언어를 이미 배운 상태였지만 ‘혼자 낯선 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어땠나요? 

처음에는 좋았어요. 소도시에서 자란 탓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도 크고 사람도 많은 게 좋았어요. 남편이 공항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다문화 센터에서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문화도 음식도 언어도 다 달라서 힘들었어요. 그리고 초반에는 남편 직장이 부산이라 부산에서 살다가 대구로 옮겨왔어요. 

 -한국에서의 현재의 삶은 어떤가요? 

부모님과 동생이 한국에 들어온 상태라 지금은 좋아요. 지금은 오히려 한국에서 사는 게 더 편해요. 

-고국이 그리울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가족들이 다 가까이 있어서 향수병은 따로 없어요. 베트남이 그리울 때는 가족들을 만나서 베트남 음식을 자주 해 먹어요. 특히 부모님이 한국 음식을 잘 못 드셔서 베트남 음식을 자주 해요. 그런데 쌀은 한국 쌀이 맛있고, 포만감이 있어서 밥은 한국 쌀로 하고, 베트남 반찬으로 주로 식사해요. 

 -베트남에 다녀온 적은 언제인가요? 

2018년 8월에 다녀오고 못 갔어요. 코로나 전에 부모님과 다 같이 다녀왔어요. 

-한국에 소속감을 느끼시나요? 

대구 한의대 다문화복지 한국어 학과에 들어가서 지금 졸업반인데 학교 수업 들으면서 한국에 소속감을 많이 느꼈어요. 한국 사람이 다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다문화 센터나 다른 병원에서 통역 일을 종종 하고 있어요.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원래 어릴 때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어려웠어요. 한국에 입국했을 때 아이가 바로 생기지 않았기도 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이중언어 강사의 꿈을 꿨었는데 이미 그 꿈은 이뤄져서 이제 사회복지사 꿈을 꾸고 있어요. 

 -대학교 진학은 어떻게 하셨나요? 

베트남에서 이수한 성적이 인정이 돼서 입학시험을 다시 치지는 않았어요. 남편이 많이 응원해 줬어요. 공부하라고 격려도 해주고요. 얼마든지 일도 할 수 있으니까 잘 찾아서 하라고 얘기해요. 

-베트남과 한국의 일상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베트남에서는 아침을 일찍 간단하게 먹는데 한국에서는 세 끼를 다 먹는게 달라요. 음식도 자극적인 게 달라요. 한국 음식은 매워요. 

-한국에서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끼신 적이 있나요? 

마스크 쓰고 있으면 외국인인지 잘 몰라요. 그런데 베트남 사람인지 알고 나면 그때부터 반말을 57 쓰기 시작하더라고요.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또래 사람인데도 갑자기 ‘베트남 사람이야? 몇 살이니?’ 이렇게 반말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저도 사람인데 존중해 주셔야죠.’라고 반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당황하면서 미안하다고 했어요. 제 생각에 외국인이 반말과 존댓말을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반말하는 게 종종 있는 것 같아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대처하려고 해요. 살면서 배우게 됐어요. 저희 동네 시장이 산업 단지라 외국인이 많은데 한 정육점이 있어요. 한국인이 와서 고기 사면 인사를 잘 하는데, 외국인이 가서 고기를 사면 계속 반말을 해요. 그래서 사장을 만나서 불만을 얘기했어요. 사장님 말고 직원분들이 외국인들에게 함부로 한다고 바로 말했어요. 그러고 나니 많이 개선되었어요. 이전보다는 환경이 많이 달라진 게 느껴지지만 아직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해요. 

-한국 친구들은 있나요? 

둘째 아이 유치원 엄마들과 어울려요. 베트남 음식을 해주면 좋아해요. 

-베트남 공동체가 있나요? 

대구 베트남 커뮤니티가 꽤 커요. 주기적으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정보교환을 해요. 본국에 있는 친구들과는 페이스북으로 자주 연락해요. 예전에 비해 요즘은 상황이 좋아졌어요. 이전에는 국제 전화비로 5~60만 원을 쓰곤 했거든요.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나중에 공부를 마치고 돈을 좀 벌어서 베트남에 가서 한국어 학원을 차리고 싶어요. 남편과 미래에 대해서 그런 구상을 하고 있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베트-한 사전과 한-베트 사전입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어 잘 모르는 게 많았기 때문에 사전을 갖고 왔습니다. 특히 다문화 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바로 사전에서 찾았습니다.

나탈리아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나탈리아입니다. 러시아에서 왔고, 38세입니다. 한국에서 산 지 16년 됐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대학교 때 어학 공부를 하러 한국에 왔다가 남편을 만났어요. 1년 동안 남편이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알고 지내다가 연애를 하게 됐고,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당시에 22살이었는데 임신을 하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어요. 당시에 아기가 하나 있어도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남편이 시부모님께서 아이를 봐 줄 수 있다고 설득해서 한국으로 와서 살게 됐어요. 그런데 둘째와 셋째를 아들 쌍둥이를 낳게 되면서 제 시간이 없어졌어요. 그러다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제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의료 관광 쪽으로 공부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일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현재 경북대학병원에 코디네이터로 근무 중인데 환자가 없어서 서류 번역 일만 하고 있어요.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당시에는 어려서 가족이 그리워질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외국에 오랫동안 나가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기대감이 더 컸어요. 한국어를 3년 배운 후라 얼마나 사용할 수 있을지도 궁금했고, 기본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해서 좋았어요. 그러다 나중에 결혼하고 한국으로 들어올 때는 마음이 달랐어요. ‘남편 한 사람만 믿고 와도 되나?’, ‘남편이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이 들었어요. 당시 저는 22살, 남편은 25살로 둘 다 어렸어요. 양가 부모님이 다 반대를 하셨지만 양가에 남편이 잘 할 수 있을 거라며 안심시켜드렸어요. 그렇지만 초기에 힘들었어요. 임신 상태라 심리적으로도 힘들었고, 친구도 없었고, 남편은 주말에 친구 만나러 가고 싶어 하고 해서 그때는 자주 싸웠어요. 

-후회를 한 적은 없나요? 

지금 주변에 누가 외국에서 살 거라고 하면 저는 반대하고 싶어요. 외국에서 외국인과 사는 것은 문화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힘든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그 문화를 느끼면서 살고 그 나라를 보고 살면 그 나라가 제일 좋은 거 같아요. 주변에서 미국의 캘리포니아나 멋진 곳에서 멋있게 산다고 얘기하면 멋져 보여도 타지 생활이 힘든 걸 제 경험으로 알다 보니까 멋진 것 보다 힘들게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적이 있나요?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나서 문화도 익숙하고 적응이 된 상태지만 한국사람들이 여전히 저를 외국인으로 대해요. 나쁘게 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거리감이 있어요. 그들 속에는 들어갈 수 없어요. 문제가 생겨도 똑같은 책임을 묻지도 않아요. 외국인이기 때문에 잘 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거든요. 회사에서도 통역이나 번역 외로는 다른 일을 하기 어려워요. 학부모 활동 중에서도, 아이들이 반장을 할 때, 학부모 리더 역할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제 말에 힘이 실리지 않는 느낌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그런 모임에 나가지 않아요. 사회 뿐만이 아니라 시댁이나 남편도 그렇게 생각해요. 남편도 제 얘기를 듣기 보다 누나에게 더 의견을 구해요. 이전에는 그런 부분으로 싸우기도 했는데 지금은 다 내려놓았어요. 이 나라의 문화는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고 사는 게 편해요. 저 뿐만이 아니라 주변 외국인들 얘기 들어보면 대체로 그렇게 느끼는 거 같아요. 

-자주 만나는 러시아 공동체가 있나요? 

제가 원래 활동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이라 러시아 학부모들 모임을 만들어서 활동했었어요. 코로나 전에 해당 구청에서 지역 모임 지원금 같은 후원을 받아서 모임을 했었어요. 학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오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곤 했어요. 그리고 서로서로 한국 내의 생활 정보를 교환하곤 했어요. 이 모임은 러시아 사람들 모임이라 심리적 충족감이 들었어요. 아무리 바빠도 서로 이 모임은 빠지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는 만날 곳이 없어서 지금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다 최근에 경북대학교 노인대 교수님의 추천으로 버스를 대절해서 팔공산 야외에서 모임 하고 왔어요. 거의 1년 만의 모임이었어요. 

 -외로울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부모님과 통화하고 러시아 친구를 만나서 얘기해요. 한국 친구는 만나도 남편 흉보는 것까지 얘기하는 건 할 수 있는데 제 입장의 이야기는 공감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깊은 얘기는 안 하게 돼요.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여자의 삶은 아이와 연결이 많이 되어 있어서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러시아로 당연히 돌아가서 살고 싶어요. 그것만 기다리고 있어요. (웃음) 지금은 저도 바쁘고, 아이들도 바빠서 갈 수 없지만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어요. 여기서 계속 살진 못할 것 같아요. 다행히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원할 때 쉽게 돌아갈 수 있어요. 

-고향이 제일 많이 생각날 때는 언제인가요? 

특정한 때 없이 친정 부모님이 현재 편찮으셔서 요즘 매일 생각나요. 그리고 특히 생각이 날 때는 해가 바뀔 때, 12월 31일부터 1월 1일이 러시아의 큰 명절이라 며칠 동안 가족이 함께 모여서 음식도 하고 놀기도 하는데 그때가 제일 생각이 많이 나요. 그런데 한국은 1월 1일이 특별한 날이 아니라 더 생각이 나요. 더군다나 제가 외동 딸이라 부모님 두 분이서 명절을 보낼 생각하니 맘이 쓰여요. 

-올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올해 계획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연말까지 계약이어서 지금 하는 일이 제게 맞는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싶어요. 원래는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다른 걸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쳤어요. 제가 아이들과 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아이들과 만나서 놀면서 러시아어를 가르쳤어요. 요즘 러시아어 수요가 좀 있어서 좀 바빴어요. 어느 일이 제 적성에 맞는지 파악 후에 다른 병원에 구직하던지 소규모 러시아어 수업 교실을 열던지 결정하려고 해요. 저희 아이들은 2개국어를 하긴 하는데 갈수록 러시아어를 배우려 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중고등학생들이라 각자 바쁘고, 엄마 약속에 따라다니려고 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남은 한 해 동안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건지 생각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에서 거의 20년을 살았지만 제주도도 한번 못 가봤어요. 그 대신 가까운 경주에 자주 갔어요. 남편이 제가 어디 가는 걸 걱정하거든요. 예전에는 러시아에 가족 보러 자주 갔었는데 코로나로 러시아에 못 가서 올해는 여수, 통영, 광주 등에 가봤어요. 기본적으로 새로운 곳에 가는 걸 좋아해서 좋았어요. 가족이 많아서 돈이 많이 드는 것 말고는 괜찮았어요. 다음에는 친구랑 여행 가고 싶어요. 

-러시아와 한국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한국의 삶은 틀에 박혀있다고 생각해요. 매일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한 가지 일을 완벽히 잘 하고, 그래서 발전이 있는 것 지만 융통성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인들은 미래를 위해 사는 것 같아요. 러시아인들은 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로맨티시스트도 많고, 소설가나 음악가가 많은 거 같아요. 또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신경 써요. 그래서 불안감이 느껴져요. 

-배우자 분과는 어떻게 소통하시나요? 

남편은 러시아어를 못해서 한국말로만 소통해요. 연애할 때는 한국어와 영어를 사용했어요. 남편이 러시아어를 크게 좋아하지 않아요. 별로 필요하지 않은 언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남편이 아이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외할머니, 할아버지도 있고, 제가 화나서 얘기할 때는 러시아어로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꼭 배워야 해요. 

-현재의 감정 상태와 삶은 어떤가요? 

육아가 힘들어요.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니까 더 공부하기 싫어하고 매번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게 힘들어요. 교육문제로 힘이 많이 빠져요. 그 밖에는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나요. 다양하게, 건강한 사람들, 우울한 사람들 등등… 외국인 한 부모 가족이나, 미혼모, 혹은 큰 병을 앓다가 돌아가시는 분들의 일 처리 등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어요. 교육청 관련 일도 해요. 러시아 사람들 유입이 많은데 한국말을 잘 하는 사람이 없어서 일이 좀 많아요. 그리고 성격상 한 번 부탁받으면 끝까지 마무리해야 되는 성격이라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집에 가면 또 애들 일 봐줘야 하고요. (웃음)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아이들이 엄마 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 러시아에 가서 한국 식당이나 문화 센터(언어나 음식, 공예 알려주는) 같은 것을 열어보면 어떨까 생각해요. 지금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라 미래에 뭘 할까 생각해 두고 있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러시아에서 가져온 도마와 한국어로 번역이 된 러시아어 사전입니다. 사전은 저한테 늘 도움이 된 책이라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김지우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김지우입니다. 41세이고, 베트남에서 왔어요. 한국에는 2008년 8월에 왔어요.

 -이름 이야기를 해주세요. 

베트남 이름은 파티란이에요. 2018년에 귀화를 하면서 한국 이름을 3만 원 주고 작명소에서 만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남편을 사랑해서 오게 되었어요. 베트남에 있을 때 약사 공부를 하던 중 아르바이트하던 회사에서 남편을 만났어요. 결혼할 때, 부모님이 보수적이셔서 많이 반대를 하셨어요. 그렇지만 제가 남편을 많이 사랑하고, 아이도 생겨서 허락을 해주셨어요.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당시에 두렵긴 했지만 남편을 믿고, 사랑하니까 왔어요. 사실 결혼할 당시에 남편이 이미 베트남에서 일하던 상황이어서 한국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었는데 남편 일 상황이 달라져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어요. 떠나올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가지로 복잡했어요. 새로운 느낌도 있고, ‘언어도 잘 모르는데 한국에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요. 

-두 분이서 소통은 어떻게 하시나요? 

남편이 베트남어를 잘 해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도착해서 언어가 안되니 답답해서 두 달 후부터 다문화 센터에서 어학공부를 시작했어요. 

-한국이 좋은가요? 

한국의 환경을 좋아해요. 대게는 나쁜 사람보다 친절하고 잘해주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아쉬운 것은 베트남 사람들 만큼 정이 많지는 않아요. 베트남 사람들은 주변에 누가 아프면 굉장히 잘 챙겨주거든요. 특히 남편과 대화가 많지 않고, 정이 많지 않아서 외로울 때가 있어요. 

-현재의 감정 상태는 어떤가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지금은 한국어를 더 잘하게 되었는데도 외로워요. 막내가 좀 크면 고국에 자주 왕래하고 싶어요. 

-고국이 그리울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노래 부르고 춤을 춰요. 울컥하고 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 나가서 노래하면 마음이 좀 풀어져요. 

-노래를 어디서 부르시나요? 

한국 가수협회에 가입된 상태예요. 요즘은 트로트를 불러요. 베트남 사람들을 모아서 노래 협회를 만들고 싶은데 아직 둘째가 어려서 외부 활동이 수월치 않아요. 

-약사 공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어렸을 때 고생을 많이 했어요. 8살 때부터 베트남 전통 빵을 밤새 만들어서 시장에서 팔았어요. 1000동에 10개인데도 사람들이 자꾸 깎아서 ‘어떤 일을 하면 사람들이 가격을 깎지 않고 지불할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약사 공부를 시작했어요. 베트남에서는 상황이 어려웠기 때문에 고등학교까지만 나왔고, 그러다 한국에 와서 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현재는 노래하고 춤을 통해 활동을 하고 싶은데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아요. 아직 아이가 어리니까 살림하고, 아이를 돌보라고들 해요. 

-가족들이 바깥 활동을 도와주지 않나요? 

 아침마다 아이들 때문에 정신도 없고, 힘들어서 외출을 해서라도 해소하고 싶은데 남편이 나가는 걸 싫어해요. 시어머니는 원래 그렇지 않았는데 남편이 싫어하니까 응원해 주지 않아요. 사실 우울증이 좀 있어요. 둘째 출산 후에 더 힘들어졌어요. 남편과도 현재 문제가 좀 있어서 부부 심리 상담을 여러 번 해봤지만 잠시 개선됐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요. 이게 3년째예요. 남편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너무 힘들어요. 

-올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별로 없어요. 베트남에 있는 친정가족과도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요. 집에도 문제가 많아서 연락하면 마음이 아프거든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개량한복처럼 현대식으로 만든 베트남의 정통 의상인 아오자이(Áo dài)와 전통 춤 소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