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21, 2021

김지우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김지우입니다. 41세이고, 베트남에서 왔어요. 한국에는 2008년 8월에 왔어요.

 -이름 이야기를 해주세요. 

베트남 이름은 파티란이에요. 2018년에 귀화를 하면서 한국 이름을 3만 원 주고 작명소에서 만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남편을 사랑해서 오게 되었어요. 베트남에 있을 때 약사 공부를 하던 중 아르바이트하던 회사에서 남편을 만났어요. 결혼할 때, 부모님이 보수적이셔서 많이 반대를 하셨어요. 그렇지만 제가 남편을 많이 사랑하고, 아이도 생겨서 허락을 해주셨어요.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당시에 두렵긴 했지만 남편을 믿고, 사랑하니까 왔어요. 사실 결혼할 당시에 남편이 이미 베트남에서 일하던 상황이어서 한국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었는데 남편 일 상황이 달라져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어요. 떠나올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가지로 복잡했어요. 새로운 느낌도 있고, ‘언어도 잘 모르는데 한국에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요. 

-두 분이서 소통은 어떻게 하시나요? 

남편이 베트남어를 잘 해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도착해서 언어가 안되니 답답해서 두 달 후부터 다문화 센터에서 어학공부를 시작했어요. 

-한국이 좋은가요? 

한국의 환경을 좋아해요. 대게는 나쁜 사람보다 친절하고 잘해주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아쉬운 것은 베트남 사람들 만큼 정이 많지는 않아요. 베트남 사람들은 주변에 누가 아프면 굉장히 잘 챙겨주거든요. 특히 남편과 대화가 많지 않고, 정이 많지 않아서 외로울 때가 있어요. 

-현재의 감정 상태는 어떤가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지금은 한국어를 더 잘하게 되었는데도 외로워요. 막내가 좀 크면 고국에 자주 왕래하고 싶어요. 

-고국이 그리울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노래 부르고 춤을 춰요. 울컥하고 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 나가서 노래하면 마음이 좀 풀어져요. 

-노래를 어디서 부르시나요? 

한국 가수협회에 가입된 상태예요. 요즘은 트로트를 불러요. 베트남 사람들을 모아서 노래 협회를 만들고 싶은데 아직 둘째가 어려서 외부 활동이 수월치 않아요. 

-약사 공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어렸을 때 고생을 많이 했어요. 8살 때부터 베트남 전통 빵을 밤새 만들어서 시장에서 팔았어요. 1000동에 10개인데도 사람들이 자꾸 깎아서 ‘어떤 일을 하면 사람들이 가격을 깎지 않고 지불할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약사 공부를 시작했어요. 베트남에서는 상황이 어려웠기 때문에 고등학교까지만 나왔고, 그러다 한국에 와서 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현재는 노래하고 춤을 통해 활동을 하고 싶은데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아요. 아직 아이가 어리니까 살림하고, 아이를 돌보라고들 해요. 

-가족들이 바깥 활동을 도와주지 않나요? 

 아침마다 아이들 때문에 정신도 없고, 힘들어서 외출을 해서라도 해소하고 싶은데 남편이 나가는 걸 싫어해요. 시어머니는 원래 그렇지 않았는데 남편이 싫어하니까 응원해 주지 않아요. 사실 우울증이 좀 있어요. 둘째 출산 후에 더 힘들어졌어요. 남편과도 현재 문제가 좀 있어서 부부 심리 상담을 여러 번 해봤지만 잠시 개선됐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요. 이게 3년째예요. 남편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너무 힘들어요. 

-올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별로 없어요. 베트남에 있는 친정가족과도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요. 집에도 문제가 많아서 연락하면 마음이 아프거든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개량한복처럼 현대식으로 만든 베트남의 정통 의상인 아오자이(Áo dài)와 전통 춤 소품입니다.

조이쮠



 *통역사와 함께한 인터뷰는 문어체를 사용하였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조이쮠이다. 32세이고, 대만에서 왔다. 한국에 온 지 2년 좀 더 되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남편과의 결혼으로 한국으로 들어왔다. 캐나다에서 영어 공부하러 가서 만났다. 그래서 초기에는 영어로 소통하다가 지금은 한국어를 배우기 때문에 한국어로 하고, 모르는 단어는 영어로 한다.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불안하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고 기대감도 있었다. 초기 입국 때는 문화와 언어가 달라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지고 있다. 앞으로, 미래에 자녀가 생기면 대만과 한국 두 곳에서 다 교육을 받게 하고 싶다. 대구에 대만 커뮤니티가 있고, 60명 정도의 대만 사람이 있다. 

-고향이 그리울 때 어떻게 하시나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들어갈 수 없지만 이전에는 1년에 2~3번씩 갈 수 있었다. 지금은 영상통화로 가족을 만난다. 그리고 대만 친구들과 만나서 함께 음식을 해먹으며 향수를 해소한다. 

-한국어를 어떻게 배우시나요? 

대만 친구나, 한국 친구를 만나서 한국어 연습을 한다. 이전에 대구 수성구 관광부에서 대만 사람에게 대구 관광을 홍보하려고 대만 사람을 모집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촬영할 때, 알게 된 한국 사람이 중국어를 잘 해서 친구가 되었다. 대만에서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한국어를 조금 배웠었다. 그리고 남편과 결혼 전에 한국어를 조금 연습했다. 결혼 전에 친정 부모님께서 반대는 하지 않으셨지만 걱정을 많이 하셨다. 지금도 여전히 걱정 중이시다. 

-한국에서의 삶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한국의 장점은 날씨가 좋다. 대만은 너무 덥다. 어려운 점은 존댓말이 어렵다. 처음 결혼 후 1년 동안 시댁에서 살았다. 그때 한국 문화를 많이 배웠다. 

-대만과 한국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대만에서는 어디든 원하는 대로 갈 수 있었고, 직업도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언어가 부족해서 어디 가기가 쉽지 않다. 대만에서 호텔 프런트에서 일했다. 한국에서는 일을 하지 않으니까 소속감도 없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공간이 어디인가요? 

한국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곳은 아직 없다. 집이 제일 좋다. 보통 새로운 곳에 가야할 때는 남편과 동행한다. 혼자 갈 수 있는 언어 실력이지만 혼자 가기 두려워서 피한다. 

-한국에서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아직 한국 사람을 많이 만나보지 못해서인지 외국인으로 차별 대우를 받은 경험은 거의 없다. 

-영주권을 취득하고 싶은가요? 

당장은 아니지만 영주권 취득할 계획이 있다. 

-올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현재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한국어를 잘 하고 싶다. 한국어를 잘 하게 되면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잠시 공부하기 싫어진다. 그리고 임신 계획이 있다.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요즘 드는 생각이 한국 친구와 함께, 대만 디저트 카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결혼 전에는 요리를 안 해서 못했었는데 지금은 하다 보니 관심이 생겼다. 

-집에서 주로 한국요리를 해 드시나요? 

한국 음식이 매워서 조금 안 맞는 편이지만 보통 집에서 남편분과 한국 음식 위주로 한다. 가끔 혼자 대만 음식 해 먹는다. 대구에 대만 식당은 없다. 중국 음식과 비슷하지만 대만 음식을 찾을 순 없다. 대신 대만에 계신 엄마가 음식을 보내준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책이다. 제목은 “친절함에도 선이 있어야 한다”이다. 인간관계에 관한 책이다. 외국에서 중국어 책을 읽으면 개인적으로 마음이 편하다. 한국에서 인간관계에 도움이 될까 봐 이 책을 가져왔다. 이 책은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용감하게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줄 알아야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내용이다

김서현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제 이름은 김서현입니다. 28세이고, 캄보디아에서 왔어요. 한국에 온 지는 8년 됐어요. 

-한국 이름은 어떻게 만드셨나요? 

남편이 작명소에 가서 만들어 주었어요. 

-본명은 뭔가요? 포우스레이노입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고향에서 대학생이었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결혼을 선택했어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솔직히 말도 안 통해서 많이 힘들었어요. 이모 소개로 남편을 만나서 남편이 캄보디아로 들어와서 결혼식하고 바로 한국으로 이주했어요. 어릴 때라 공부도 계속하고 싶고, 다시 집에 가고 싶었어요. 한국에 온 지 3개월 만에 첫아이가 생겨서 아이 낳고, 환경도 낯설어서 쉽지 않았어요. 이모가 한국에 계셨지만 늘 같이 있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둘째 아이 낳고 나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말이 안 통해서 혼자 다닐 수도 없어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한국에서 살기 좋아요. 남편 도움 없이도 혼자 간단한 일도 처리할 수 있어서 좋아요. 

-현재의 감정 상태는 어떤가요? 

이전에 비해 많이 익숙하고 안정적이에요. 아이 교육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해요. 남편은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100프로 남편에게 의지할 수 없어서 제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아이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래에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전혀 없어요. (웃음) 

-이모님은 아직 한국에 계시나요? 

이모뿐 아니라 부모님, 동생과 다른 친척분들도 많이 한국에 들어와 계세요. 그래서 더 캄보디아로 돌아갈 일이 없는 것 같아요. 

 -가족이 다 한국에 와 있어도 고국이 그리울 때가 있나요? 

고향 설날 때 그리워요. 고향에서는 명절에 동네에서 잔치 같은 거 하면서 춤도 추고 음식도 같이 먹고 같이 어울리는 시간이 있는데, 한국은 차례 지내고 헤어지니까 아쉬워요. 

-한국 영주권 취득은 하셨나요? 

한국 국적과 캄보디아 국적을 이중으로 가지고 있어요 

-대구에 캄보디아 커뮤니티가 있나요? 

있어요. 종종 정보를 교환해요. 

 -한국어는 어떻게 배우시나요? 

다문화 센터를 통해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어요. 한국어 공부가 쉽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어린이집 앞 공원에서 저희 아이가 놀고 있었어요. 아이가 거기 있는 어린애가 귀여워서 ‘이쁘다’ 하는데, 그 아이 엄마가 와서 자기 아이와 놀지 말라고 해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요즘도 그런 빈도가 있나요? 

아직 좀 있어요. 애들 학교 방문할 때도 애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괜히 눈치 보고 주변을 살피게 돼요. 마음을 당당하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잘되지 않아요. 제가 욕심이 많은 편이라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어떠한 걸 하고 싶다고 하면 주변에서 ‘ 한국인도 하기 힘든데 외국인인 네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말을 종종 들으면 힘들어요. 한국인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인들도 종종 그렇게 말해요. 그게 좀 그랬어요. 

-미래에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내년에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어요. 전공은 사회복지사 쪽으로 진학하던지 아니면 경찰 공무원 쪽으로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캄보디아 고등학교 성적표를 떼 와서 입학원서를 내면 돼요. 지금은 미리 서류 준비 중이에요. 그런데 현재 고민이 있어요. 파티마 병원 약국 통역 일 제안이 들어왔는데, 애가 어리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싶어서 그 제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회 활동을 해보니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느껴요. 그래서 좀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열심히 사는 거 같아서 저도 열심히 살고 싶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이 그려진 티셔츠와 전통 치마입니다. 캄보디아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가져왔습니다

추해화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추해화입니다. 44세 78년생이고, 중국에서 왔습니다. 한국에는 2001년에 왔어요. 20년 되었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저는 집에서 큰 딸이에요. 중국에서 잘 살아도 부모님에게 별 도움이 못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한국에서 남편이 중국으로 왔어요. 중국에서 만나서 결혼하고 한국으로 왔어요.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남편이 중국에 왔을 때 소개로 만나게 되었어요. 연애도 안 해보고 해서 잘 몰랐어요. 남편이랑 전화 통화를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친해졌어요 

-떠나올 때의 기분이 어땠나요? 

나이도 어리고 해서 느낌이 별로 없었는데 엄마가 저를 버스에 태우고, 혼자 내릴 때 쓸쓸해 했어요. 언어가 됐지만 억양이 달라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어요. 식당에 가도 제 스스로가 외국인이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한두 달 지나니 외로웠어요. 우울증인 것 같았어요. 비행기만 보면 ‘어디로 가는 거지?’ 이런 생각하게 되었어요. 엄마 아빠가 한국에 온 이후로는 괜찮아졌어요. 아버지는 한국에서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중국으로 돌아가셨어요. 친척들이 한국에 살고는 있지만 멀리 떨어져 살아요. 

-고국이 그리운가요? 

나이가 드니,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한국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서의 생활이 적응이 돼서 중국에서는 못살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나이가 40이 넘고, 다른 피붙이가 없으니 중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 20살 된 아들이 있지만 중국에 가고 싶어요. 떠나온 세월이 길어서 ‘바뀐 중국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해요. 국적도 한국이라 중국에서 장기 체류도 못하고, 이런저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아플 때 고국이 많이 생각나요. 스트레스 받으면 이유 없이 아파요. 티브이 보면서 감정이입을 많이 해요. 

-고국이 생각날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엄마랑 화상 통화 해요. 예전에는 스트레스 받으면 쇼핑했어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밖에 못 나가지만요. 

-떠나올 때 가져온 물건이 있나요? 

어릴 때 왔기 때문에 챙길 생각을 안 했어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갔을 때 제가 대학교에 들어갔고, 다문화홍보강사를 했어요. 고국을 알린다는 생각에 행복했어요. 그때 입었던 옷을 생각했어요.

 -대구에 고국 공동체가 있나요? 

대구에 조선족 커뮤니티는 없어요. 마음이 맞으면 소통해요. 나라는 따지지 않아요. 

-한국에서의 현재의 삶은 어떤가요? 

다문화 센터에서 이중언어 코치를 하고 있어요. 방통대에서 중어중문학과 전공했어요. 힘들었지만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 덕분에 졸업했어요. 자원봉사 일을 10년 정도 했어요. 중국어를 가르치는 것 등이요. 지금은 청소년 지도 협의회에서 일해요. 일하고 나면 뿌듯하고 좋아요. 

-한국이 좋은가요? 

좋은 면도 있고, 힘들기도 해요. 중국에서는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게 익숙한데 여기서는 조금 차이가 나요. -한국에 오신 것을 후회하시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중국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초등학교 수업에 사용할 때 만든 지도입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다문화홍보강사 일을 하게 되면서 직접 바느질해서 만든 작품이라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습니다

김 릴리안



 *영어 인터뷰 번역본은 문어체를 사용했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김릴리이다. 결혼해서 2013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한국 남자와의 깊은 인연이 생겨서 한국에 왔다. 

-후회한 적은 없나요? 

후회는 하지 않는다.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처음 떠나올 때 기대감에 흥분했다. 

-출국 전날 기분은 어땠나요? 

막상 여행 전날 긴장을 풀려서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날씨가 너무 춥고,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음식은 맛이 전혀 없었고, 인파에 너무 무서웠고, 남편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큰 실수를 할까 봐 너무 무서웠다. 

-현재의 감정 상태와 삶은 어떤가요? 

지금은 요리와 기후 등에 대한 몇 가지 관심사를 발견했다. 여전히 겨울이 싫지만 특별한 제약 없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예민한 편인데 감정적으로 닫힌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으신가요? 

아니다. 지금은 두 나라 사이에서 결정해야 할 생각이 없다.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두 나라의 장점을 모두 누리고 싶다. 

-언젠가 브라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그렇다, 브라질로 돌아가서 다른 나라 여행을 하고 싶다. 

-한국의 영주권을 받고 싶으신가요? 

이미 한국인이다. 

-브라질의 시민권을 포기하실 건가요? 

아니다. 브라질 사람으로, 한국인으로 계속 살아갈 거다. 두 나라를 사랑하는데 왜 굳이 자신의 국적을 포기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고국이 가장 생각나는 때는 언제인가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브라질 소식을 자주 보는데 브라질을 위한 올바른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소속감을 많이 느끼시나요? 

한국에 있는 것이 집처럼 느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2019년부터 한국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브라질에서 했던 것처럼 집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들으며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 한국에서도 나만의 즐거운 습관을 만들며 조금씩 문제를 해결하며 지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 당시 한국 귀화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단순한 문서 외에 이 나라가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었는지 깨달았다. 상상치도 못했던 아이, 남편, 양질의 교육, 멋진 친구들, 음식, 일 등을 얻었더라. 그 때서야 이 나라가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깨달았다. 

-브라질과 한국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큰 차이점은 의심할 여지 없이 기후와 과일, 자연 및 해변이다. 피부 색이나 태도 등, 모든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반대이다. 닮은 것은 글쎄, 자동차와 남자들인 것 같다. 지구 상에서 서로의 위치가 끝과 끝에 있는 것처럼 공통점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두 나라가 거의 별 개의 두 행성 같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졸업장이다. 내게 개인적인 자부심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 가져온 것은 직업과 학업이었다. 또 하나의 물건은 해먹인데 브라질의 전통적인 물건이다. 해먹에 누워 자연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박지현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박지현입니다. 베트남에서 왔고, 34살입니다. 한국에는 15년째 살고 있어요.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나요? 

2012년에 국적취득 후 개명했어요. 남편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고등학교 자퇴 후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옷가게에서 일을 했었어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왔었는데 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꼈어요. 한국 드라마도 많이 봤어요. 그래서 한국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드라마에서 눈 내리는 모습 보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지인을 통해서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고국은 떠나올 때 기분이 어땠나요? 

어리고 철이 없어서 두려움보다 신나고 설렜어요. 비자 받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막상 떠나올 때는 좋았어요. 겨울에 들어와서 한두 달 좋았다가 바로 임신하고, 입덧과 언어와 문화 차이로 몇 년 힘들었는데 다행히 시어머니와 남편이 힘이 많이 되어 주셔서 지금껏 잘 살고 있어요.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떠신가요? 

외국에서 사는 일이 많이 힘들어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잘 해주었지만 힘든 점도 많았어요. 사회에 적응하기도 힘들었고, 아이들 교육문제도 힘들었어요. 그러다 한국 엄마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고 저의 의견대로 하기로 했어요. 필요성을 느끼면 할 것 같아요. 뒤쳐칠까 걱정이 들긴 해요. 

-현재의 감정 상태와 삶은 어떤가요? 

너무 신기해요. 어릴 때는 공부하는 게 너무 싫고, 힘들어했었는데 한국에 와서 새로운 기회가 생긴 거 같아요. 어릴 때는 공부에 대한 애정과 꿈이 없었는데 한국에 와서 2018년쯤, 서른 살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어느 날, 이렇게 계속 아르바이트하며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 중앙 경찰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고졸 검정고시부터 시작하고, 경찰서 통역 요원으로 등록해서 공부하면서 통역 일을 했어요. 3번째 시험에 합격했어요. 지금도 너무 믿기지 않을 만큼 신기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베트남에서 가져온 휴대폰 거치대와 가방입니다

왕정한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왕정한입니다. 중국에서 왔고, 34살입니다. 한국에 2013년에 왔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중국에서 대학 졸업 후 중국어 강사로 일을 했었는데 그때 지금의 신랑을 만났어요. 그때 신랑이 제 학생이었거든요. 근데 신랑의 유학 기간이 끝나고, 저도 외국 생활이 궁금하기도 해서 오게 됐어요. 사실 한국에는 2012년도에 대학 졸업 여행으로 와 봤었어요. 당시에 여행도 재미있었고, 한국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아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았어요. 공항에서 어떤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는데 지하철로 동행해 주시면서 제가 알던 언니 집까지 데려다주셨어요. 심지어 용돈으로 10만 원도 주셨어요. 정말 친절한 아저씨여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데 이젠 찾을 수가 없네요. 그래서 그때 여행 경험도 너무 좋아서 오기로 결심을 하게 됐어요. 중국어 강사 일도 계속하고 싶었고요. 당시에 자신감이 넘쳤어요. 그렇게 한국에 와서 일을 하다가 1년 정도 지난 후에 지금의 신랑과 결혼을 했어요. 

-한국어는 어떻게 배우게 되셨나요? 

예전부터 한국어가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여자들이 부드럽게 말하는 것도 좋았고요. 처음에 한국에 와서는 중국어 강의가 많아서 따로 배울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상생활하면서 혼자 배우다가 나중에 결혼 후에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좀 들었어요. 

-배우자 분과는 어느 언어로 대화하시나요? 

중국어랑 한국어 다 써요. 

-아이가 있으신가요? 

7살 아이가 있어요. 

-아이도 중국어를 하나요? 

중국어를 잘은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해요.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떠신가요? 

처음에는 경험 삼아 한국에 온 거라 이렇게 오래 있게 될지 몰랐어요. 당시에는 신랑과 연애만 하는 사이였으니까요.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서 행복해요. 

-중국에 계신 가족들은 그립지 않나요? 

인터넷 덕분에 영상통화가 잘 되니까 괜찮아요. 전에는 1년에 두세 번씩 다녀오곤 했었어요. 

-한국 사람과의 결혼을 가족이 반대하진 않았나요? 

부모님께서 반대하셨어요. 제가 과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한국은 과일이 비싸다고 하시면서 겁주셨어요. ‘너 한국으로 시집가면 딸기 엉덩이도 못 먹는다.’라고 하셨었어요. 사실 중국에서 살 땐 딸기를 박스째로 샀었거든요. 근데 확실히 한국은 값도 비싸고, 맛도 달랐어요. 그리고 시아버님도 반대하셨었어요. 하나뿐인 성공한 아들이 외국인과 결혼한다고 하니까 싫어하셨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되게 좋아하세요.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고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많이 없어요. 아직 나이도 어리고, 당장 내일이라도 갈 수 있으니까요. 혹시 신랑이 가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갈 수는 있을 것 같아요. -향수병도 없으신가요? 향수병 없어요. 여기 생활에 만족해요. 

-중국과 한국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먹는 거 빼고는 큰 차이가 없어요. 음식은 적응이 힘들었어요. 한국에 와서 초반에 살이 10킬로가 빠졌었었어요. 당시에 40킬로뿐이 안됐었어요. 입맛에도 너무 안 맞고, 당시에는 너무 비싸게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당시 월급이 30만 원밖에 안됐었거든요. 인턴으로 일을 하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계속 가격을 비교하고 사 먹다 보니까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그 당시에 울산에 살았는데 학원 원장님께서 김치도 주시고, 음식을 챙겨주셨었어요. 지금은 중국음식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먹어요. 제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어서 집에서도 중국식으로 먹어요. 아이는 한식으로 먹고요. 

-한국에서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아뇨. 없어요.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외국인이라고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고요. 편해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어머님들도 반찬도 많이 챙겨주시고요. 김치도 매년 담가주시고요.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저는 감사한 마음이 많아요. 그리고 보통은 제가 입다물고 있으면 외국인이라는 걸 몰라요. 그리고 알았어도 크게 차별을 받은 적은 없었어요. 다들 친절했거든요. 딱 한 번? 세탁소에 운동화를 맡기러 갔는데 이사하기 전 세탁소는 한 켤레에 3500원이었는데 새로 이사 온 곳 세탁소에서는 5000원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 비싸네요, 그래도 해주세요.’ 했더니 세탁소 주인 할아버지께서 ‘한 짝에 5000원’이라고 하셔서 그냥 왔었어요. 딱히 어디 가격표가 있는 게 아니라 확인할 길도 없고, 화도 나서 그냥 나왔어요. 

-영주권이 있으신가요? 

네, 영주권 있어요. 

-한국에서의 생활 중 힘든 점이 있나요? 

한국 존댓말 너무 힘들어요. 시어머니한테도 ‘카드 가져와봐라’ 이렇게 말했었어요. 습관이 안돼서요. 제가 혼자서 공부할 때 한국어 교재가 반말로 되어있었거든요. ‘안녕’, ‘미안해’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버릇이 없다는 오해를 받았어요. 사실 저희도 억울해요. 중국어엔 존댓말이 없으니까요. 중국에선 나이 관계없이 다 친구처럼 이야기하니까요. 또 중국에선 대답할 때 ‘네’가 없어서 제가 ‘엉-’이렇게 대답하니까 신랑이 ‘네’ 해야 되는 거라고 가르쳐줬었어요. 시부모님은 이제 적응이 되셨어요. 얼마 전엔 시아버지께서 시어머니께 좋은 선물을 사드렸는데 제가 장난으로 ‘아버지 사람 됐네’라고 말하고 같이 웃었어요. 그러고는 시아버지께서 ‘응, 맞아. 아빠 이제 사람 될 거야’라고 답하셨어요. 그래서 여전히 말하는 대상에 따라 쓸 수 있고, 없는 표현을 구분하는 게 어려워요. 

-자녀 교육문제로 문화 차이를 많이 느끼시나요? 

아이가 7살이라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제가 한국 역사를 잘 몰라서 곤란할 때가 있어요. 중국에서는 조부모님들이 아이를 많이 봐주는데 여기선 혼자 해야 하니까 그게 좀 힘들긴 한데 그래도 부모가 돌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희 아이가 할머니 집에만 가면 치킨을 찾거든요. 집에서는 잘 안 시켜주니까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해달라는 거 다 해주니까요. 그럴 때마다 아이는 부모가 직접 키우는 게 맞는다는 생각을 해요. 

-올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특별한 바람은 없어요. 코로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둘째를 낳고 싶어요. 둘째 낳고 한 3년 정도 쉬다가 다시 중국어를 가르칠 계획이 있어요. 첫째 낳았을 때는 혼자서 해야 되니까 너무 힘들어서 생각을 못 했는데 이제는 첫째가 많이 커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피리와 보물주머니 그리고 중국어 학습책입니다. 피리는 중학교 다닐 때 음악 선생님께서 선물해 주셨는데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고, 보물주머니는 어릴 적부터 거스름돈을 조금씩 넣어 보관해 온 주머니입니다. 그리고 중국어 학습책은 처음으로 한국에서 중국어를 가르칠 때 사용한 책입니다

윤알렉산드라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윤알렉산드라입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왔고, 나이는 50이에요.
한국에 온 지는 5년 되었고, 결혼 한 지는 4년 되었어요. 고려인 3세예요.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카자흐스탄에서 원래 돈을 잘 벌었어요. 그런데 2015년에 나라에 경제 위기가 와서 돈을 많이 잃게 되고, 아들 대학 교육비를 벌려고 한국으로 왔어요. 당시에는 문제 해결을 하려고 온 것이라 결혼해서 살게 될지는 몰랐어요.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지인 소개로 만났어요. 만나자마자 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스스로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느낌이 들어서 놀랐어요.
당시 한국에 왔을 때 46살에 와서 결혼을 할 수 없을 줄 알았어요.
주변 몇몇 한국 사람들이 70대 남자와 결혼할 수도 있을 거라고 해서 기도를 많이 했어요. 위대한 힘에게 기도하고, 수첩에 배우자 상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 적고 기도했어요.
예를 들어. 나이는 몇 살, 경제적인 능력, 내 아이를 존중해 줄 사람 등등 20개 넘게 적었고, 결혼 후 그 수첩을 발견했을 때 거의 다 해당돼서 놀라웠어요. 남편은 저보다 5살 많아요.
결혼 후에는 남편이 초반에 저의 한계를 알기 위해 힘들게 했었어요. 힘들었지만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참았어요. 그 당시에 친구가 많이 필요했어요.
남편은 불 성향이고 저는 물 성향이라 결국 물이 불을 이겨요. 그러니 당신이 결국 나를 이길 거라고 남편이 말했어요. ‘당신이 물이라 나를 물처럼 안아준다. 당신이 나보다 더 강하다.’라고 말했어요. 지금은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느낌은 어떠셨나요?

일하러 오기 전에 한국에 네 번 정도 한국에 와 본 적 있었어요.
한국 문화원에서 주최한 한국 세미나를 통해 한국에 온 적 있었고, 여행으로 두어 번 더 온 적이 있었어요. 처음 한국 왔을 때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느껴진 뜨거운 공기가 사막 같았어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저에게 친절했어요. 그래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았어요.
평소 카자흐스탄에서 알던 한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연락해’ 하는 말이 약속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에 와서 다 연락해 봤는데 그게 약속이 아니라 예의상 하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당시에 우연히 알게 된 한국 남자분이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비자 받을 때 주소가 필요했는데 주소도 빌려주고 출입국 사무소도 함께 가주고 밥도 사주고 그랬어요. 흑심이 있던 건 아니고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라고 진심 호의로 도와주신 분이었어요.

-대구에 카자흐스탄 커뮤니티가 있나요?

없어요.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두세 명뿐이에요. 거리도 가깝지 않아서 교류하지 않아요. 동향이라서 만나기보다는 경제력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교류하게 되는 거 같아요. 러시아 사람들과 문화도 비슷하고 언어도 카자흐스탄어와 우즈베키스탄어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러시아 사람들과 비슷해요. 그런데 이민자 여성들은 대체로 너무 젊어요. 저와 나이차가 커서 관심사가 달라요. 그리고 대체로 한국 남편들이 부인이 타인으로 인해 나쁜 영향을 받을까 걱정해서 외부와의 교류를 염려해요. 저도 결혼 전에 몇몇 한국 남자들이 아빠처럼 자기를믿어라 하고는 속인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사람 조심하라고 해요. 각자 다 목적이 있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고국이 그리울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남편과 우즈베키스탄 식당을 찾아다녀요. 와룡시장 안에 아시안 마켓에서 식료품을 구할 수 있어요. 남편이 저를 위해 러시아 음식을 많이 주문해 줘요.

-한국이 좋으신가요?

한국은 대체로 좋아요. 여름 날씨 빼고.
카자흐스탄에서는 여름에 바닷가에 자주 갔는데 한국은 카자흐스탄의 바다보다 파도가 심해서 바다 수영하기 무서워요.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저 스스로 느끼기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남편과 함께 시장에 다닐 때 불친절하면 남편이 다시는 가지 말라고 해요.
부당한 일을 당하면 남편이 바로 가서 해결해 줘요.
남편은 내가 버스도 잘 못 탄다고 생각해요. 실수를 몇 번 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나 봐요.
지하철이 낯설어서 실수한 적 있어요. 택시 타면 기사와 소통이 쉽지 않아요.

-한국 영주권이 있으신가요?

영주권을 받고 싶어요. 현재 결혼할 때 받은 F4 비자가 있는데 영주권 취득을 하려면 F6 비자를 받아야 해요. 그러려면 혼인 신고서를 가지고 카자흐스탄에 가서 서류를 신청해야 해요.
아무튼 현재는 영주권 받으려면 서류 정리를 해야 해요.
남편이 미래에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본국 국적을 포기하진 않을 예정이에요.

-올해 계획이 있으신가요?

처음에 한국에 와서는 언어가 잘되지 않아서 식당 일 같은 걸 했어요.
(결혼 이후로는) 남편이 제 외부 활동에 걱정이 많아서 다른 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요.
아직 언어가 잘 안돼서 아이가 된 거 같아요.
그렇지만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함께 뭔가를 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김치를 함께 담근다든가, 그런 활동을 아줌마들과 하고 싶어요. 아줌마들과 얘기하면 문법 같은 거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남편이 대체로 집에 있고, 외출하기가 쉽지 않아서 동네 아줌마들과도 교류가 쉽지는 않아요.
집에 고양이도 있고, 코로나 때문에 외로울까봐 남편이 식물을 많이 사다 줬어요. 그래서 식물도 케어해야 하고 한국어도 열심히 배워야 해요. 그래서 하루가 빨리 지나가요. 그리고 남편과 토요일마다 차 타고 작은 여행을 해요. 토요일은 가족의 날이에요.
남편 자녀인 25살 큰 딸이 대학을 졸업해서 따로 살고, 아들과 함께 살아요. 아들은 곧 군대에 가야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아요. 제 아들은 카자흐스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하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카자흐스탄에 간 게 3년 전이에요. 내년 여름에 갈 계획이에요. 작년 6월에 가려고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했어요.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저는 한국에서 오래도록 사는 게 좋은데 남편은 애들이 자라고 나면 외국에서 여행하면서 살아보고 싶어 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져온 모자와 러시아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 세트입니다.
키르기스스탄 전통 모자는 펠트로 만들어졌고, 여름에 써도 덥지 않고 겨울에 쓰면 따뜻합니다. 인형 세트에는 낙타 인형이 있는데 키르기스스탄에서 낙타는 부의 상징입니다.
낙타를 소유하는 것을 번영의 표시로 여겼습니다.
오랜 세월 유목민의 생활에서 낙타는 주요 운송수단이었고 삶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동물입니다. 


Thursday, November 4, 2021

장거리대화 개인전 - "나의 벗, 너의 오브제"

 



«나의벗, 너의 오브제»

2021년 11월 8일 - 19일 :
<송현1동 행정복지센터>
대구시 달서구 중흥로8길 41, 평일 오전 9 - 오후 6시
<엘모카페>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66, 매일 오전10 - 오후 6시

2021년 11월 15일 - 27일 :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내 053창업카페>
대구시 북구 호암로 51, 평일 오전 10 - 오후 10시

전시기획: 장거리 대화 - 윤혜경, 정효정, 현지성

이 프로젝트는 «2021 대구문화 재단 신규 단체 활동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전시 참여자 모집 및 인터뷰 진행은 달서구 건강가정. 다문화 가족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나의벗, 너의 오브제» 소개글
장거리대화 팀의 공동 프로젝트인 «나의벗, 너의 오브제»는 유학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며 만나게 된 세 작가가 이방인으로서의 경험과 생각들을 토대로 대구지역의 이주여성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전시와 출판을 통해서 보이고자 하는데서 출발하였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같은 지역에 살지만 무관심 혹은 편견으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지역사회에 드러내고자 하며 이주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들의 더욱 안정적인 정착을 응원하고자 하였다. 한편 지역민들에게는 전시 관람을 통해 이주여성들의 삶을 발견하고 간접적인 만남을 통해 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생활공간에서의 전시를 통해 지역민들과 좀 더 밀접한 교류와 소통이 이루어지고, 예술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2021년 여름, 장거리대화 팀은 달서구 건강가정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약 스무명의 이주여성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들의 주요 생활공간 속에서 각자가 모국을 떠나올 때 가져온 소중한 물건과 함께 사진 촬영을 진행하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재조명 하는 시간이 되었으며,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그 중 어느 역할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길 응원하게 되었다. 한편 프랑스에 거주중인 현지성 작가는 프랑스에 정착한 한국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토대로 비디오-퍼포먼스를 제작하여 한국과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주민 여성들의 간접적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나의벗, 너의 오브제» 전시를 보러오는 관객에게도 우리가 몰랐던, 혹은 무관심했던 이주여성들과의 만남과 대화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주민들을 마주했을 때 스스로의 태도나 생각에 대해 자문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타인은 우리의 거울이다. 이방인과 이주민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과 한국의 특징은 우리가 스스로 보지 못하는 우리의 얼굴이다. 자크 데리다는 "이방인은 첫 물음을 제기하면서 나를 문제선상에 올려놓는 사람이다" 라고 했다. 다문화 정책과 제도를 섬세하게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제도는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운영해나가는 것이다.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배척, 타문화권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불신이 달라지지 않으면 포용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라 할 수 없다. 이해하려면 알아야 한다. «나의벗, 너의 오브제» 전시가 타인을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현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성미 (시인)

*«나의벗, 너의 오브제» 평론글에서 발췌




































Sunday, April 4, 2021

나와공간

hye: sunday brunch

ji: 멀고 먼

hoy : 일요일 아침 무릉도원

Saturday, April 3, 2021

나와공간

hye:주말에도 변함없이


 

ji: 추억이 쌓이는 곳


Hyo : 빗방울 보는자리




Friday, April 2, 2021

나와공간

 hye:하루에도 여러번


ji: 여백

Hyo : 좋은 봄날을 지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