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21, 2021

왕정한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왕정한입니다. 중국에서 왔고, 34살입니다. 한국에 2013년에 왔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중국에서 대학 졸업 후 중국어 강사로 일을 했었는데 그때 지금의 신랑을 만났어요. 그때 신랑이 제 학생이었거든요. 근데 신랑의 유학 기간이 끝나고, 저도 외국 생활이 궁금하기도 해서 오게 됐어요. 사실 한국에는 2012년도에 대학 졸업 여행으로 와 봤었어요. 당시에 여행도 재미있었고, 한국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아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았어요. 공항에서 어떤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는데 지하철로 동행해 주시면서 제가 알던 언니 집까지 데려다주셨어요. 심지어 용돈으로 10만 원도 주셨어요. 정말 친절한 아저씨여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데 이젠 찾을 수가 없네요. 그래서 그때 여행 경험도 너무 좋아서 오기로 결심을 하게 됐어요. 중국어 강사 일도 계속하고 싶었고요. 당시에 자신감이 넘쳤어요. 그렇게 한국에 와서 일을 하다가 1년 정도 지난 후에 지금의 신랑과 결혼을 했어요. 

-한국어는 어떻게 배우게 되셨나요? 

예전부터 한국어가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여자들이 부드럽게 말하는 것도 좋았고요. 처음에 한국에 와서는 중국어 강의가 많아서 따로 배울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상생활하면서 혼자 배우다가 나중에 결혼 후에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좀 들었어요. 

-배우자 분과는 어느 언어로 대화하시나요? 

중국어랑 한국어 다 써요. 

-아이가 있으신가요? 

7살 아이가 있어요. 

-아이도 중국어를 하나요? 

중국어를 잘은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해요.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떠신가요? 

처음에는 경험 삼아 한국에 온 거라 이렇게 오래 있게 될지 몰랐어요. 당시에는 신랑과 연애만 하는 사이였으니까요.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서 행복해요. 

-중국에 계신 가족들은 그립지 않나요? 

인터넷 덕분에 영상통화가 잘 되니까 괜찮아요. 전에는 1년에 두세 번씩 다녀오곤 했었어요. 

-한국 사람과의 결혼을 가족이 반대하진 않았나요? 

부모님께서 반대하셨어요. 제가 과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한국은 과일이 비싸다고 하시면서 겁주셨어요. ‘너 한국으로 시집가면 딸기 엉덩이도 못 먹는다.’라고 하셨었어요. 사실 중국에서 살 땐 딸기를 박스째로 샀었거든요. 근데 확실히 한국은 값도 비싸고, 맛도 달랐어요. 그리고 시아버님도 반대하셨었어요. 하나뿐인 성공한 아들이 외국인과 결혼한다고 하니까 싫어하셨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되게 좋아하세요.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고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많이 없어요. 아직 나이도 어리고, 당장 내일이라도 갈 수 있으니까요. 혹시 신랑이 가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갈 수는 있을 것 같아요. -향수병도 없으신가요? 향수병 없어요. 여기 생활에 만족해요. 

-중국과 한국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먹는 거 빼고는 큰 차이가 없어요. 음식은 적응이 힘들었어요. 한국에 와서 초반에 살이 10킬로가 빠졌었었어요. 당시에 40킬로뿐이 안됐었어요. 입맛에도 너무 안 맞고, 당시에는 너무 비싸게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당시 월급이 30만 원밖에 안됐었거든요. 인턴으로 일을 하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계속 가격을 비교하고 사 먹다 보니까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그 당시에 울산에 살았는데 학원 원장님께서 김치도 주시고, 음식을 챙겨주셨었어요. 지금은 중국음식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먹어요. 제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어서 집에서도 중국식으로 먹어요. 아이는 한식으로 먹고요. 

-한국에서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아뇨. 없어요.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외국인이라고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고요. 편해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어머님들도 반찬도 많이 챙겨주시고요. 김치도 매년 담가주시고요.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저는 감사한 마음이 많아요. 그리고 보통은 제가 입다물고 있으면 외국인이라는 걸 몰라요. 그리고 알았어도 크게 차별을 받은 적은 없었어요. 다들 친절했거든요. 딱 한 번? 세탁소에 운동화를 맡기러 갔는데 이사하기 전 세탁소는 한 켤레에 3500원이었는데 새로 이사 온 곳 세탁소에서는 5000원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 비싸네요, 그래도 해주세요.’ 했더니 세탁소 주인 할아버지께서 ‘한 짝에 5000원’이라고 하셔서 그냥 왔었어요. 딱히 어디 가격표가 있는 게 아니라 확인할 길도 없고, 화도 나서 그냥 나왔어요. 

-영주권이 있으신가요? 

네, 영주권 있어요. 

-한국에서의 생활 중 힘든 점이 있나요? 

한국 존댓말 너무 힘들어요. 시어머니한테도 ‘카드 가져와봐라’ 이렇게 말했었어요. 습관이 안돼서요. 제가 혼자서 공부할 때 한국어 교재가 반말로 되어있었거든요. ‘안녕’, ‘미안해’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버릇이 없다는 오해를 받았어요. 사실 저희도 억울해요. 중국어엔 존댓말이 없으니까요. 중국에선 나이 관계없이 다 친구처럼 이야기하니까요. 또 중국에선 대답할 때 ‘네’가 없어서 제가 ‘엉-’이렇게 대답하니까 신랑이 ‘네’ 해야 되는 거라고 가르쳐줬었어요. 시부모님은 이제 적응이 되셨어요. 얼마 전엔 시아버지께서 시어머니께 좋은 선물을 사드렸는데 제가 장난으로 ‘아버지 사람 됐네’라고 말하고 같이 웃었어요. 그러고는 시아버지께서 ‘응, 맞아. 아빠 이제 사람 될 거야’라고 답하셨어요. 그래서 여전히 말하는 대상에 따라 쓸 수 있고, 없는 표현을 구분하는 게 어려워요. 

-자녀 교육문제로 문화 차이를 많이 느끼시나요? 

아이가 7살이라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제가 한국 역사를 잘 몰라서 곤란할 때가 있어요. 중국에서는 조부모님들이 아이를 많이 봐주는데 여기선 혼자 해야 하니까 그게 좀 힘들긴 한데 그래도 부모가 돌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희 아이가 할머니 집에만 가면 치킨을 찾거든요. 집에서는 잘 안 시켜주니까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해달라는 거 다 해주니까요. 그럴 때마다 아이는 부모가 직접 키우는 게 맞는다는 생각을 해요. 

-올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특별한 바람은 없어요. 코로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둘째를 낳고 싶어요. 둘째 낳고 한 3년 정도 쉬다가 다시 중국어를 가르칠 계획이 있어요. 첫째 낳았을 때는 혼자서 해야 되니까 너무 힘들어서 생각을 못 했는데 이제는 첫째가 많이 커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피리와 보물주머니 그리고 중국어 학습책입니다. 피리는 중학교 다닐 때 음악 선생님께서 선물해 주셨는데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고, 보물주머니는 어릴 적부터 거스름돈을 조금씩 넣어 보관해 온 주머니입니다. 그리고 중국어 학습책은 처음으로 한국에서 중국어를 가르칠 때 사용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