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24, 2021

마이클

 


*영어 인터뷰 번역본은 문어체를 사용했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마이클 피터슨이다. 나이는 52세이고, 결혼 한지 약 20년 됐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그 당시 그랬어야만 했었다 

-후회한 적 있나요? 

때때로 후회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솔직히 느낌이 전혀 없다. 

-출국 전날 기분이 어땠나요? 

위와 같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냥 평범한 삶이다. 

-현재 감정 상태는 어떻습니까? 

보통이다. 

-언젠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있나요? 

해외로 나갈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한국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 

-한국의 영주권을 받고 싶으신가요? 

한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고국이 가장 생각나는 때는 언제인가요? 

미국에서의 취업 기회를 찾을 때만 생각한다. 

-한국에 소속감을 많이 느끼시나요? 

별로 느끼지 않는다. 그나마 소속감을 느꼈던 순간은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이다. 

-미국과 한국의 일상 중 가장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성인이 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해외에서 보냈다.처음에는 유럽에서, 그 다음에는 아시아에서 보냈다. 그래서 어느 두 나라를 특별히 비교하기가 어렵다. 

-고향이 그립거나 심리적 안정감이 필요할 때 주로 무엇을 하나요?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올해 미국으로 돌아간다면 잠시 가족들 방문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고향에 가지 않을 것 같다. 

-고국 공동체가 있나요? 

없다. 

-한국이 좋나요? 

나쁘지 않다. 

-한국의 좋은 점 혹은 나쁜 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특별히 생각해 본 적 없다.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은 나의 가족이다. 

-한국말을 잘하시나요? 

말하기와 듣기는 그다지 좋지 않지만 일 때문에 한국어로 읽고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는 어떻게 배웠나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치 안에서 배웠다.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없다. 

-한국에서 문화 활동을 즐기십니까? 

업무의 일환으로 많이 참석해야 하고 때로는 문화 활동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 그 사이에서 문화 활동을 즐긴다.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미국에서 괜찮은 직업을 찾는 것이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정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나는 어떤 «사물»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그나마 가져온 것 중에 중요한 것은 프리랜서 편집 및 작문 작업을 위한 참고 자료와 미국에서 떠나올 때 가져온 재킷이다

크래그




 *영어 인터뷰 번역본은 문어체를 사용했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크레이그 메이슨이다. 미국에서 왔고, 한국에 온 지 14년 되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어서 이주를 왔다.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미국을 떠나서 기뻤다. 한국에 오기 전에 유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당시, ‘나는 떠나고 싶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었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한국에 도착했을 때, 새 아파트의 침대 위에 앉아서 약 10분 동안 나는 ‘내가 무엇을 했는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 모든 것을 재정렬하고는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나는 여전히 이곳에 사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을 계속해서 전진할 것이다. 

-후회한 적이 있나요? 

후회한 적은 없다.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있나요?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고 싶다. 

-한국의 영주권을 받고 싶으신가요? 

영주권을 받고 싶지만 그간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고, 지금까지는 매년 비자 갱신이 쉬웠다. 다시는 미국에서 살 생각이 없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싶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연락을 유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미국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는 아주 다른 곳으로 느껴진다. 

-고향이 그립거나 심리적 안정감이 필요할 때 주로 무엇을 하나요? 

미국이 그리운 건 아닌데, 심리적 안정이 필요할 땐 보통 매운 피자를 먹고, 와인도 마시고 음악을 듣거나 스케이트보드 영상을 본다. 

-한국에 소속감을 많이 느끼시나요? 

여기에 온 첫해에 깊은 유대감을 느꼈던 친구를 만난 후 정말로 한국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만남은 내가 이 나라에 머물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다.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한국에서 가끔 인종차별을 느끼긴 하지만 심각하지도 않고, 웃지 않을수도 없다

-미국과 한국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여기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내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집값이 너무 비싸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또한 미국에서는 모든 것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 도시를 가로질러야 하고, 이동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더 비싸다) 미국에도 지하철과 택시가 있지만 훨씬 더 비싸고 멀리 떨어져 있다. 

-한국이 좋나요?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의 좋은 점 혹은 나쁜 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의 좋은 점은 주변 사람들에게 매우 개방적이며 원하는 재료나 자료를 찾기가 매우 쉽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매우 훌륭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점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말을 잘 하시나요? 

한국어를 하지만 잘하지는 못한다.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다. 

-한국어는 어떻게 배웠나요?

한국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자주 쓰기 연습을 하며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에서 문화 활동을 즐기시나요? 

인디밴드 콘서트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종종 전시회를 보러 간다. 

-고국 공동체가 있나요? 

여기서 만나는 미국인은 부산에 사는 작가뿐이다. 책과 글쓰기에 그토록 열정적인 사람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현재의 감정 상태와 삶은 어떤가요? 

이곳에 와 산 이후로 그저 행복했다. 나에게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가장 중요하고, 행복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 한국어와 영어로 다양한 작문 작업을 하고 있는데 12월에 좋은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앞으로 그림과 글쓰기를 계속할 생각이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특별히 가치 있는 물건들은 가져오지 않았다. 처음 왔을 때 오기 전부터 많이 쓰던 낡은 타자기를 가지고 왔는데 별로 귀한 것도 아니고, 그 이후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 외에는 2년 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가져온 세 장의 드뷔시(Debussy) LP 세트가 소중하다

Sunday, November 21, 2021

카트리니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카트리니샤입니다. 네팔에서 왔구요. 나이는 27세에요. 한국에 온 지 거의 6년이 다 되었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결혼하고 한국으로 왔어요. 결혼하고 1년 정도 네팔에 있는 세종학당에서 기본 한국어를 배우고, 그다음에 한국으로 왔어요.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네팔에서 만났어요. 고모님도 한국 사람이랑 결혼을 하셨고, 제 남편도 고모님이 소개해 주셨어요. 남편이 네팔로 와서 만났어요. 남편은 키가 작아서 드라마처럼 멋있지 않았어요. ‘한국 사람 아닌 것 같은데…’한 게 첫 느낌이었어요. 초반에는 앱으로 대화했어요. 그러다가 결혼 결심하고, 한국으로 왔어요. 

-결혼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동기는 고모가 한국 사람이 좋다고 했고, 네팔보다 생활이 편하다고 했어요. (네팔과 한국의 시차가 얼마나 있나요?) 인천에서 비행기로 6시간 걸리고, 3시간 정도 시차가 있어요. 통화하는 데 무리 없어요.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고국 떠날 때 무섭다는 생각을 했어요. 새로운 환경과 시부모님을 만나는 것이 겁났고, 무서웠어요. 한국과 시댁 문화가 달라요. 언어가 다르니 표현을 제대로 못할까 봐 무섭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아이 낳고 나서는 (4살이에요) 괜찮아졌어요. 영주권 따고 사회통합프로그램 거치고 지금은 좋아요. 출산했을 때 엄마가 왔었어요. 사실 코로나 이전에는 네팔에 자주 갔었어요. 그리고 엄마께서 제가 먹고 싶은 것도 가져오신 적도 있었어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당시에 남편이 거제도에서 있었어요. 조선소에서 일했어요. 다문화 센터에 네팔 담당 선생님이 없어서 힘들었어요. 앞으로는 한국어 능력시험 보고, 이중언어 코치로 일하고 싶어요. 사투리는 어렵지만 네팔어와 순서가 같아서 수월해요. 시댁에서 쓰는 말은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네팔과 한국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고모님 말씀처럼 생활이 많이 편해요. 설거지와 밥 모두 기계로 해서 편해요. 네팔에서는 물도 끓여서 썼는데 여기는 정수기가 있어서 편해요,

-고모님은 한국에서 자주 만나시나요? 

고모님은 아산에 사세요. 고모님이 시부모님과 같이 사실 때는 만나기가 힘들었어요. 지금은 고모님의 시부모님 돌아가셔서 일도 하시고 하세요. 

-한국에서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저는 살면서 스스로가 외국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해요. 사람들이 편하게 해주고, 어린이집 학부모님들이 저를 부러워해요. 외국어를 배우려면 힘든데 우리 아이는 저절로 배우게 돼서 부럽다고 해요. 어린이집에서 강사로 일해요. 그 덕분에 한국 사회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먼저 네팔 언어를 가르쳐 주는 일을 하니까 좋아요. 남편과 언어 때문에 오해가 생겼을 때 전에는 먼저 미안하다고 많이 했지만 지금은 제가 이겨요. 언어를 알고 오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음식은 잘 맞으시나요? 

식료품 구하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좋아요. 네팔 식당도 대구에 많아요. 네팔의 유명한 음식은 카레와 난이에요. 네팔에는 냉장고가 없어서 그때그때 해야 해요. 여기선 반찬 해서 냉장고에 보관하니 좋아요. 

-명절 때는 어떤가요? 

명절 때 같이 음식 해요. 명절 음식 맛있어요. 젓가락질을 잘 못해서 힘들었어요. 네팔에선 손으로 먹거든요. 그래서 아기 젓가락을 사서 연습했었어요. 혼자 있을 때는 손으로 먹었어요. 음식이 많이 달라서 힘들게 배웠어요. 

-네팔도 커피가 유명한가요? 

네팔에는 차가 유명해요, 밀크티. 

-네팔에서 산에 많이 가셨나요? 

네팔에서는 산 넘어서 물도 길어오고, 놀러 가는 느낌으로 많이 가요. 한국산은 길이 잘 나있지만 네팔은 길이 없어요. 자연 그대로 있어요. 

-네팔에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나요? 

네팔에서 관광하고 싶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안 계셔서 관광을 많이 못 했어요. 한국 사람들도 여행 가면 트래킹이나 패러글라이딩을 하는데 저는 안 해봤어요. 그래서 해보고 싶어요.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다문화 센터 강사 수업하고, 한의대에 가고 싶어요. 대구이주여성에게 공부시켜주는 곳이 있거든요. 네팔에서 서류 준비해서 하고 싶어요. 대구시에서 50% 다문화 센터에서 50% 지원해 준다고 해서 좋은 기회 같아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네팔의 국기와 아기 돌잔치 전통 의상입니다. 네팔 국기는 고향에 가고 싶을 때 가끔 국기를 꺼내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고는 합니다. 네팔의 국기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각형 모양이 아닌 위아래 양쪽으로 삼각형 두 개를 놓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파란색 테두리는 평화를 의미하며, 빨간색은 네팔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아기 돌 때 입는 전통의상은 제 딸에게 엄마 나라의 문화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레송송마이



*통역사와 함께한 인터뷰는 문어체를 사용하였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레송송마이다. 나이는 스물한 살이고, 베트남에서 왔다. 한국에 온 지 2년 반 되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한국 남편을 만나서 오게 되었다.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회사로 소개받았다. 첫인상이 엄청 좋았다. 하지만 남편은 나를 별로 안 좋아했다. 내가 ‘만나보면 좋을 거다’라고 했다. 그렇게 만나다가 결혼까지 했다. 내가 외동딸이라 남편 생각에 성격이 까다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엄청 슬펐다. 비행기 탈 때 울었다.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었다. 지금은 영상 통화를 자주 한다. 지금은 생활하기도 괜찮다. 슬프기도 하지만 남편이 잘 해준다.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남편은 힘들어할 것 같다. 

-고향이 생각날 때는 언제인가요? 

거의 매일 밤, 자기 전에 생각난다. 사진 보고 좀 울기도 하고 그런다. 그리고 남편이랑 얘기를 많이 한다. 

-출산 때 가족이 오셨나요? 

부모님이 내가 태어나고 6개월 때 이혼했다. 출산 때 혼자 있었다. 좀 힘들고 외로웠다. 작년 7월이라 코로나 때문에 친구도 못 왔다. 지금도 남편은 출장을 자주 간다. 

-떠나올 때 가져온 물건이 있나요? 

그렇다. 가지고 온 물건들 많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시나요? 

맛있다. 

-베트남 공동체가 있나요? 

대구에 베트남 친구는 많지 않다. 그래서 다문화 센터에 자주 온다.

-한국의 좋은 점 혹은 나쁜 점이 있나요? 

안 좋은 점은 많이 없다. 외국인이라고 하면 다르게 본다. 그건 불편하다. 

-영주권이 있으신가요? 

아직 없다. 하지만 취득 계획은 있다. 지금은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올해 계획이 있나요? 

특별한 계획은 없다.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우선 한국어를 잘 하고 싶고, 국적취득도 하고 싶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이름이 적혀 있는 생일 기념 봉투와 베트남 돈이 들어있는 지갑이다. 베트남에서 영어선생님한테 받은 선물인데 제가 살면서 어려운 일 혹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이 나에게 좋은 조언을 해주셨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선물이다.

호레호앙안



*통역사와 함께한 인터뷰는 문어체를 사용하였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호레호앙안이다. 베트남에서 왔고, 서른한 살이다. 한국에 온 지 3년 되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남편을 사랑해서 올 수 있었다. 남편과 연애해서 결혼했다. 남편이 베트남으로 여행을 왔고,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다. 남편과 소통은 영어로 했다. 

-고국을 떠났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베트남에 갔다가 다시 왔다. 한국으로 올 때 기뻤다. 남편을 많이 사랑해서 좋았다. 

-결혼 후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결혼 전에는 내 생각을 먼저 했는데 결혼 후에는 남편과 가족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베트남에서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했었는데 한국에서는 일도 안 하고, 가족도 없어서 처음에는 많이 슬프고 힘들었다. 고국에서처럼 자유롭지 못해서 새가 날아다니지 못하고,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어떠신가요? 

한국말이 어렵다. 소통이 힘드니 생활이 조금 힘들다. 그렇지만 지금은 친구도 생기고, 남편이랑 유튜브로 음식 만드는 것을 업로드하고 있다. 

-고국이 생각날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가족과 매일 전화한다.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나요? 

열 살 차이 나는 친한 동생이 있다. 한국에서 만나서 친하게 지낸다. 한국에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가족이 있어서 자주 만나 친하게 지내기는 힘들다. 다른 가족들은 베트남에 있다. 

-한국에서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요? 

한국에서의 실제 거주 기간은 1년 반 정도이다. 코로나 때문에 베트남에 오래 있었다. 한국에서는 집이 제일 편하다. 

-한국에서의 현재의 삶은 어떤가요? 

집안일을 하고, 유튜브를 만든다. 요리 촬영을 3개월 정도 했다. 재미있다. 지금은 친구랑 가족이랑만 공유한다. 운동도 하고 있다. 

-유튜브 편집하는 것 어렵지 않나요? 

원래 인테리어 디자인을 했기 때문에 유튜브 편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국이 좋으신가요? 

한국 음식이 좋다. 된장찌개를 좋아한다. 많이 고민하는 편이 아니라서 생활은 편하다. 

-올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한국어 공부하는 거 말고는 별다른 계획이 없다.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한국에서 인테리어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언어가 된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친정어머니가 남편에게 선물한 베트남의 유명한 장소들이 그려진 그릇이다. 일주사(One Pillar Pagoda, 뭇꽃사원), 하롱베이(Ha Long Bay), 호안끼엠(Hoan Kiem) 호수 등이 그려져있다. 호아 람(Hoa Lam)이라는 유명한 도자기 제품인데 남편이 굉장히 좋아해서 접시로 쓰지 않고 책장에 전시해 두었다.

전효우



*통역사와 함께한 인터뷰는 문어체를 사용하였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전효우다. 나이는 36세이고, 중국에서 왔다. 한국에 온 지 4년 정도 되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남편이 중국인인데 일 때문에 한국에 있어서 따라오게 되었다. 한국어는 다문화 센터에서 배우고 있다. 

-한국으로 떠나올 때 기분이 어땠나요? 

원래 한국을 좋아했다. 한국 드라마나 화장품 등을 좋아했다. 그래서 처음에 호기심이 많았다. 외국으로 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힘든 점도 있었지만 지금은 긍정적이다. 모든 것이 좋다. 

-고향이 그리울 때나 가족이 그리울 때는 언제인가요? 

코로나 이전에는 왕래가 많았지만 지금은 못 가서 힘들다. 중국에 자녀가 있다. 7살이다. 외할머니가 키워주시고 계신다. 영상통화를 자주 한다. 

-고국이 그리울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남편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집이 그립거나 슬프거나 하지는 않는다. 집에서 중국 음식도 많이 해먹는다. 다른 이주여성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싶으신가요? 

영주권은 나중에 취득하고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싶다. 한국 국적 취득은 아직 생각 안 한다. 

-고국을 떠나올 때 가져온 소중한 물건이 있나요? 

나는 한족이라 한복을 안입고, 치파오를 입는다. 남편은 조선족이라 한복을 입는다. 원래 잘 입지 않지만 한국에 들어올 때 치파오를 가져왔다. 

-한국이 좋으신가요? 

처음에도 좋았지만 지금은 더욱 좋다. 생활도 편하다.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언어가 안돼서 못 알아들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안 좋은 점이나 인종차별은 별로 못 느꼈다.코로나로 밖에 많이 못 나가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중국 공동체가 있나요? 

그렇다, 있다. 

-올해의 계획이 있나요?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려고 한다. 아이를 데리고 올 생각도 있다.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중국으로 가서 살 수도 있다.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이 좋으면 계속 살 수도 있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옥팔찌와 오브제는 아니지만 남편이다. 엄마가 20년 전에 비싼 돈으로 옥팔찌를 두 개 사셨는데 지금까지도 엄마와 하나씩 팔에 차고 있다. 지금은 내가 한국에 있지만 항상 엄마가 곁에 있는 느낌이다

양링



*통역사와 함께한 인터뷰는 문어체를 사용하였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양링이다. 46세이고, 중국에서 왔다. 한국에는 작년 6월에 왔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결혼은 중국에서 한 지 오래되었고, 중국에서 계속 살다가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오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중국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중국에서 유명한 인테리어 소품 체인점을 운영했었다. 중국 청도 지하철의 화장실 공사도 했었다.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남편은 중국에서 만났다. 둘 다 골프를 좋아했다. 남편을 골프장에서 만났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중국과 한국은 모든 게 달랐다. 많은 것에서 차이가 있었다. 처음에 걱정이 많이 되었고, 후회도 했다. 중국에서는 중산층으로 잘 지냈는데 한국에 오니 저소득층으로 살게 된 느낌이다. 남편이 잘 해줘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남편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댁에서는 중국어로 소통을 하시는 편인가요? 

중국어로 얘기하고, 한국어는 지금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 계속 살 계획이신가요? 계속 한국에서 머물고 싶다. 

-지금의 감정은 어떠신가요? 

지금은 처음보다는 괜찮아졌다.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가요? 

중국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한국에서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남편이랑 같이 잘 살고 싶다.

 -고국에서 가지고 온 소중한 물건이 있으신가요? 

코로나 때문에 급하게 한국에 오게 되었다. 골프를 좋아하지만 골프채는 가져올 수 없었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가족사진이 들어있는 중국의 고모님이 쓰신 시집과 중국 윈난성의 부와 평안을 대표하며 귀신을 내쫓는다는 말이 있는 행운의 장식품이다.


바이레라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바레리아입니다. ‘레라’라고 불러요. 러시아에서 왔고, 29세입니다. 한국에 온 지 7년 되었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2014년에 한국에 왔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공부하러 왔다가 결혼하게 되면서 길게 체류하게 되었어요. 러시아에는 결혼 후 신혼여행으로 결혼 5년 차에 방문했어요. 졸업 후 관광학과 공부를 하고, 영남대학교에서 의료관광 관련 일을 했어요.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남편이 러시아에 고려인 관련 봉사활동으로 와서 알게 됐고, 그 후 제가 한국에 공부하러 오면서 연애가 시작되었어요. 

-한국으로 떠나올 때 기분이 어땠나요? 

처음 한국에 올 때는 설레고 신났어요. 지금은 좋고 행복한데 출산 때 엄마가 멀리 있어서 외로웠어요. 남편이 부모와 친구 역할을 다 해주고 있어요. 지금은 출산 4개월 차로 일을 쉬고 있어요. 

-고국이 가장 생각날 때는 언제인가요? 

특정한 어떤 때가 있기보다는 문득문득 그리워요. 엄마랑 같이 가고 싶은 곳을 여기저기 생각해두었어요. 

-고향이 어디인가요? 

볼고그라드(Volgograd)라는 도시가 고향이에요. 직항으로 가려면 10시간 정도 걸려요. 한국 음식이 입에 맞아서 러시아 음식은 잘 하지 않는데, 고국의 특별한 음식은 러시아에서 가족들이 보내주곤 했는데 코로나로 최근에는 그 부분이 아쉬워요. 

 -고국이 그리울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엄마와 영상통화를 해요. 출산 때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시차가 6시간이 나 러시아가 새벽 2시인데 전화했어요. 

-러시아 공동체가 있나요? 

작은 모임이 있었어요. 아이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쳐주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없어요. 

-한국에 소속감이 들 때는 언제인가요? 

5년차 때부터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옷 입는 스타일도 달랐는데 조금씩 한국 스타일로 맞춰 갔어요.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더 소속감이 들고 사람들이 혼혈이냐는 얘기를 종종 했어요. 지금은 출산으로 일은 쉬고 있어요.    

-러시아와 한국의 일상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은 공원이나 건물 시설, 공중 화장실 등이 잘 되어 있고, 식당에 반찬이 많아서 너무 좋아요. 맛에 대한 표현도 한국은 다양해요. 전라도 식당에 꼭 가볼 계획이에요. 

-한국에서 좋아하는 공간이 있나요? 

집이 좋아요. 내 집이라서요. 그리고 집 근처 공원에 아기가 울 때 바로 나갈 수 있어서 좋아요. -한국의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모든 시설이 잘 되어있어요. 안 좋은 점은 친절한 듯하면서 부정적인 거 같아요. 제가 외국인이어서 시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하셨었어요. 지금은 아주 좋아요. 

-영주권을 가질 계획이 있나요? 

영주권을 가질 계획이 있어요. 영주권을 취득하게 되면 러시아 시민권은 포기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언젠가 고국에 돌아갈 생각이 있나요? 

이젠 러시아에 돌아가서 못 살 거 같아요. 20대에 한국에 와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이곳이 좋아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올해는 운전면허를 따려고 했는데 아기가 어려서 당장은 먼 미래 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요. 올해 제일 하고 싶은 건 면허 따는 것이에요. 소윤이(아기)가 외로울 거 같아서 둘째는 꼭 낳고 싶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은으로 만든 딸랑이와 러시아에서 가져온 티포트 세트입니다. 딸랑이는 제가 러시아에서 아기 때 가지고 놀던 딸랑이인데 제 딸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찻잔세트는 러시아에서 결혼할 때 찻잔세트를 선물하는 문화가 있는데 결혼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라이띠따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라이띠따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왔고, 서른다섯 살이에요. 한국에 온 지 9년 되었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결혼을 하면서 오게 되었어요. 저는 결혼을 늦게 한 편이에요. 캄보디아에서는 15-17세에 결혼을 많이 해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많이 힘들었어요. 한국말도 모르고 생활도 잘 몰라서 힘들었어요. 다문화 센터에서 많이 가르쳐 주셔서 감사했어요. 

-캄보디아 공동체가 있나요? 

예전에는 많이 만났어요. 캄보디아 음식도 먹고, 정보도 교환하고 아이들과도 같이 많이 만났어요.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화장품을 파는 일을 하고 싶어요. 캄보디아 식당도 열고 싶어요.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고 싶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한국어로 번역이 된 캄보디아 책입니다. 처음에 한국 왔을 때 이 책이 외롭지 않게 많은 도움이 되어주었습니다.


판티홍눙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판티홍눙입니다. 베트남에서 왔고, 24살이에요. 한국에 온 지 2년 9개월 되었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베트남에서의 일상은 반복적이에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서 오게 되었어요. 그리고 한국에 아는 친척 언니가 있었어요. 언니가 ‘한국 사람이랑 결혼 할래?’하고 물어봐서 ‘알겠다’고 대답했어요.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남편은 사진으로 소개받았고, 전화로 대화를 했어요. 남편이 베트남에 방문했을 때는 조금 다른 모습에 실망했어요. ‘결혼 안할래’하고 생각했었어요. 당시에 파파고 번역기로 소통했어요. 그런데 한 번은 컵라면을 먹었는데 그 모습이 소박해 보이고 좋았어요. 또 남편이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니 빨리 결혼 하자고 했어요. 그러다가 한달 후 결정했어요. 당시 베트남 남친이 있었지만 새로운 경험을 원했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했어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이 반복되는 삶이 싫었어요. 한 달 동안 울다가 결심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기대도 많고 설렘도 있어요. 특히 한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있어요. -적응은 잘 하셨나요? 문화적 차이가 많았어요. ‘빨리빨리’ 문화에 적응이 좀 힘들었어요. 

-아이가 있으신가요? 

아이는 한 명 있어요. 

-올해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올해 국적취득을 하고 싶어요. 면접에 꼭 합격하고 싶어요.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미래 계획 많아요. 일하고, 대학에도 입학하고 싶고요. 맞벌이를 해서 집도 사고 싶어요. 그리고 사진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예술에 관심이 많고, 만들기를 좋아해요. 사람들을 찍고 싶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베트남 전통 의상과 백만 원 정도의 베트남 돈입니다. 엄마께서 제가 경제적 독립할 수 있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국했을 때 주신 돈입니다.

강란란

 


*통역사와 함께한 인터뷰는 문어체를 사용하였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강란란이다. 50세이고, 중국에서 왔다. 한국에 온 지 3년 정도 됐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남편이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떨어져 살다가 같이 살아야겠다 싶어서 들어왔다. 자녀는 셋이고 20년 동안 남편이 2~3개월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생활했다. 남편은 조선족이다. 

-아이들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올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처음 입국할 때는 좋은 편은 아니었다.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당시 아들만 데리고 오고, 딸 둘은 중국에 남아 있었다. 큰 딸이 며칠 전에 들어왔다. 곧 학교에 들어갈 예정이다. 둘째 딸은 아직 중국에 있다. 처음 입국 때는 아는 사람도 없고, 언어도 안돼서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다문화 센터를 다니면서 한국어도 배우고 다른 외국인분들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로 좋아졌다. 다양한 이민자분들을 만나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안도감(?)도 생기고, 마음이 풀어진 것도 있다. 

-고국이 그리울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평소에는 그럭저럭 잘 지내는데 추석이나 설날 같은 큰 명절에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어르신들도 보고 싶고 집이 그립다. 고향이 생각날 때면 중국 음악을 듣는다. 

 -한국에서 20년 이상 일하신 배우자분은 한국 사람이라고 느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그렇다. 중국 친구는 없고 주변에도 다 한국 사람들뿐이다. 외모도 다르지 않고 그냥 한국 사람 같다. 우리 남편은 한국 사람과 똑같다. 중국 반찬보다 한국 반찬을 더 선호한다. 

 -한국 요리는 따로 배우셨나요? 

다문화 센터에서 운영하는 요리 교실을 2~3년 동안 수강하면서 많이 배웠다. 

-언젠가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계속 계속 여기서 살고 싶어요. (웃음) (통역사가 아닌 강란란씨의 표현) 여러 가지로 편리하고, 교육도 중국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중국과 한국에서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중국은 교육열과 교육비가 만만치 않아서 아이들과 부모가 교육 문제로 스트레스가 많은데 한국은 그 편이 좀 더 자유로운 거 같다. 

-한국 생활에서 힘든 부분은 뭔가요? 

아직 언어가 서툴러서 한국 사람들을 많이 접하지 못해서 문화 차이 때문에 생기는 힘든 경험을 하진 못했다. 

-대구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요? 

대구 화원에 ‘사문진 나루터’에 배 타는 곳을 좋아한다. 그 외 날씨가 좋으면 어디든 나가는 거 좋아한다. 

-한국의 영주권을 취득하고 싶으신가요? 

영주권 취득은 희망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 확실히 언제 취득할지 계획은 할 수 없는 상태이다. 

-올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직장을 찾아서 빨리 돈을 벌고 싶다. 남편이 혼자 20년 이상 경제 활동을 해서 미안하고 도움이 되고 싶다. 현재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아들이 8살이라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꼭 구직을 하고 싶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중국 전통 의상과 ‘복’자가 그려진, 부를 상징하는 대표 장식품이다. 한국에 오면서 들고 왔다.

김지은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김지은입니다. 베트남에서 왔고, 본명은 부헝타이입니다. 현재 초등학교에서 베트남어 수업을 하고 있어요. 

-한국 이름은 언제 받으셨나요? 

2012년에 받았어요. 2012년에 국적을 취득하면서 한국 이름으로 바꿨어요. 남편이 만들어 줬는데, 그런대로 마음에 들어요. 친정 부모님은 부헝타이로 불러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티브이에서 한국을 보면 아름답고 좋아 보였는데 결혼하면서 오게 됐어요.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사촌동생이 한국에 있어서 소개해 줬어요. 순하고 착한 느낌이라 좋았어요. 그렇게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했어요.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기대나 설렘보다는 걱정이 많았어요. 언어를 이미 배운 상태였지만 ‘혼자 낯선 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어땠나요? 

처음에는 좋았어요. 소도시에서 자란 탓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도 크고 사람도 많은 게 좋았어요. 남편이 공항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다문화 센터에서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문화도 음식도 언어도 다 달라서 힘들었어요. 그리고 초반에는 남편 직장이 부산이라 부산에서 살다가 대구로 옮겨왔어요. 

 -한국에서의 현재의 삶은 어떤가요? 

부모님과 동생이 한국에 들어온 상태라 지금은 좋아요. 지금은 오히려 한국에서 사는 게 더 편해요. 

-고국이 그리울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가족들이 다 가까이 있어서 향수병은 따로 없어요. 베트남이 그리울 때는 가족들을 만나서 베트남 음식을 자주 해 먹어요. 특히 부모님이 한국 음식을 잘 못 드셔서 베트남 음식을 자주 해요. 그런데 쌀은 한국 쌀이 맛있고, 포만감이 있어서 밥은 한국 쌀로 하고, 베트남 반찬으로 주로 식사해요. 

 -베트남에 다녀온 적은 언제인가요? 

2018년 8월에 다녀오고 못 갔어요. 코로나 전에 부모님과 다 같이 다녀왔어요. 

-한국에 소속감을 느끼시나요? 

대구 한의대 다문화복지 한국어 학과에 들어가서 지금 졸업반인데 학교 수업 들으면서 한국에 소속감을 많이 느꼈어요. 한국 사람이 다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다문화 센터나 다른 병원에서 통역 일을 종종 하고 있어요.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원래 어릴 때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어려웠어요. 한국에 입국했을 때 아이가 바로 생기지 않았기도 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이중언어 강사의 꿈을 꿨었는데 이미 그 꿈은 이뤄져서 이제 사회복지사 꿈을 꾸고 있어요. 

 -대학교 진학은 어떻게 하셨나요? 

베트남에서 이수한 성적이 인정이 돼서 입학시험을 다시 치지는 않았어요. 남편이 많이 응원해 줬어요. 공부하라고 격려도 해주고요. 얼마든지 일도 할 수 있으니까 잘 찾아서 하라고 얘기해요. 

-베트남과 한국의 일상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베트남에서는 아침을 일찍 간단하게 먹는데 한국에서는 세 끼를 다 먹는게 달라요. 음식도 자극적인 게 달라요. 한국 음식은 매워요. 

-한국에서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끼신 적이 있나요? 

마스크 쓰고 있으면 외국인인지 잘 몰라요. 그런데 베트남 사람인지 알고 나면 그때부터 반말을 57 쓰기 시작하더라고요.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또래 사람인데도 갑자기 ‘베트남 사람이야? 몇 살이니?’ 이렇게 반말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저도 사람인데 존중해 주셔야죠.’라고 반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당황하면서 미안하다고 했어요. 제 생각에 외국인이 반말과 존댓말을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반말하는 게 종종 있는 것 같아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대처하려고 해요. 살면서 배우게 됐어요. 저희 동네 시장이 산업 단지라 외국인이 많은데 한 정육점이 있어요. 한국인이 와서 고기 사면 인사를 잘 하는데, 외국인이 가서 고기를 사면 계속 반말을 해요. 그래서 사장을 만나서 불만을 얘기했어요. 사장님 말고 직원분들이 외국인들에게 함부로 한다고 바로 말했어요. 그러고 나니 많이 개선되었어요. 이전보다는 환경이 많이 달라진 게 느껴지지만 아직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해요. 

-한국 친구들은 있나요? 

둘째 아이 유치원 엄마들과 어울려요. 베트남 음식을 해주면 좋아해요. 

-베트남 공동체가 있나요? 

대구 베트남 커뮤니티가 꽤 커요. 주기적으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정보교환을 해요. 본국에 있는 친구들과는 페이스북으로 자주 연락해요. 예전에 비해 요즘은 상황이 좋아졌어요. 이전에는 국제 전화비로 5~60만 원을 쓰곤 했거든요.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나중에 공부를 마치고 돈을 좀 벌어서 베트남에 가서 한국어 학원을 차리고 싶어요. 남편과 미래에 대해서 그런 구상을 하고 있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베트-한 사전과 한-베트 사전입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어 잘 모르는 게 많았기 때문에 사전을 갖고 왔습니다. 특히 다문화 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바로 사전에서 찾았습니다.

나탈리아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나탈리아입니다. 러시아에서 왔고, 38세입니다. 한국에서 산 지 16년 됐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대학교 때 어학 공부를 하러 한국에 왔다가 남편을 만났어요. 1년 동안 남편이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알고 지내다가 연애를 하게 됐고,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당시에 22살이었는데 임신을 하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어요. 당시에 아기가 하나 있어도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남편이 시부모님께서 아이를 봐 줄 수 있다고 설득해서 한국으로 와서 살게 됐어요. 그런데 둘째와 셋째를 아들 쌍둥이를 낳게 되면서 제 시간이 없어졌어요. 그러다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제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의료 관광 쪽으로 공부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일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현재 경북대학병원에 코디네이터로 근무 중인데 환자가 없어서 서류 번역 일만 하고 있어요.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당시에는 어려서 가족이 그리워질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외국에 오랫동안 나가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기대감이 더 컸어요. 한국어를 3년 배운 후라 얼마나 사용할 수 있을지도 궁금했고, 기본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해서 좋았어요. 그러다 나중에 결혼하고 한국으로 들어올 때는 마음이 달랐어요. ‘남편 한 사람만 믿고 와도 되나?’, ‘남편이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이 들었어요. 당시 저는 22살, 남편은 25살로 둘 다 어렸어요. 양가 부모님이 다 반대를 하셨지만 양가에 남편이 잘 할 수 있을 거라며 안심시켜드렸어요. 그렇지만 초기에 힘들었어요. 임신 상태라 심리적으로도 힘들었고, 친구도 없었고, 남편은 주말에 친구 만나러 가고 싶어 하고 해서 그때는 자주 싸웠어요. 

-후회를 한 적은 없나요? 

지금 주변에 누가 외국에서 살 거라고 하면 저는 반대하고 싶어요. 외국에서 외국인과 사는 것은 문화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힘든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그 문화를 느끼면서 살고 그 나라를 보고 살면 그 나라가 제일 좋은 거 같아요. 주변에서 미국의 캘리포니아나 멋진 곳에서 멋있게 산다고 얘기하면 멋져 보여도 타지 생활이 힘든 걸 제 경험으로 알다 보니까 멋진 것 보다 힘들게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적이 있나요?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나서 문화도 익숙하고 적응이 된 상태지만 한국사람들이 여전히 저를 외국인으로 대해요. 나쁘게 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거리감이 있어요. 그들 속에는 들어갈 수 없어요. 문제가 생겨도 똑같은 책임을 묻지도 않아요. 외국인이기 때문에 잘 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거든요. 회사에서도 통역이나 번역 외로는 다른 일을 하기 어려워요. 학부모 활동 중에서도, 아이들이 반장을 할 때, 학부모 리더 역할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제 말에 힘이 실리지 않는 느낌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그런 모임에 나가지 않아요. 사회 뿐만이 아니라 시댁이나 남편도 그렇게 생각해요. 남편도 제 얘기를 듣기 보다 누나에게 더 의견을 구해요. 이전에는 그런 부분으로 싸우기도 했는데 지금은 다 내려놓았어요. 이 나라의 문화는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고 사는 게 편해요. 저 뿐만이 아니라 주변 외국인들 얘기 들어보면 대체로 그렇게 느끼는 거 같아요. 

-자주 만나는 러시아 공동체가 있나요? 

제가 원래 활동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이라 러시아 학부모들 모임을 만들어서 활동했었어요. 코로나 전에 해당 구청에서 지역 모임 지원금 같은 후원을 받아서 모임을 했었어요. 학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오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곤 했어요. 그리고 서로서로 한국 내의 생활 정보를 교환하곤 했어요. 이 모임은 러시아 사람들 모임이라 심리적 충족감이 들었어요. 아무리 바빠도 서로 이 모임은 빠지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는 만날 곳이 없어서 지금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다 최근에 경북대학교 노인대 교수님의 추천으로 버스를 대절해서 팔공산 야외에서 모임 하고 왔어요. 거의 1년 만의 모임이었어요. 

 -외로울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부모님과 통화하고 러시아 친구를 만나서 얘기해요. 한국 친구는 만나도 남편 흉보는 것까지 얘기하는 건 할 수 있는데 제 입장의 이야기는 공감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깊은 얘기는 안 하게 돼요.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여자의 삶은 아이와 연결이 많이 되어 있어서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러시아로 당연히 돌아가서 살고 싶어요. 그것만 기다리고 있어요. (웃음) 지금은 저도 바쁘고, 아이들도 바빠서 갈 수 없지만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어요. 여기서 계속 살진 못할 것 같아요. 다행히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원할 때 쉽게 돌아갈 수 있어요. 

-고향이 제일 많이 생각날 때는 언제인가요? 

특정한 때 없이 친정 부모님이 현재 편찮으셔서 요즘 매일 생각나요. 그리고 특히 생각이 날 때는 해가 바뀔 때, 12월 31일부터 1월 1일이 러시아의 큰 명절이라 며칠 동안 가족이 함께 모여서 음식도 하고 놀기도 하는데 그때가 제일 생각이 많이 나요. 그런데 한국은 1월 1일이 특별한 날이 아니라 더 생각이 나요. 더군다나 제가 외동 딸이라 부모님 두 분이서 명절을 보낼 생각하니 맘이 쓰여요. 

-올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올해 계획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연말까지 계약이어서 지금 하는 일이 제게 맞는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싶어요. 원래는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다른 걸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쳤어요. 제가 아이들과 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아이들과 만나서 놀면서 러시아어를 가르쳤어요. 요즘 러시아어 수요가 좀 있어서 좀 바빴어요. 어느 일이 제 적성에 맞는지 파악 후에 다른 병원에 구직하던지 소규모 러시아어 수업 교실을 열던지 결정하려고 해요. 저희 아이들은 2개국어를 하긴 하는데 갈수록 러시아어를 배우려 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중고등학생들이라 각자 바쁘고, 엄마 약속에 따라다니려고 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남은 한 해 동안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건지 생각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에서 거의 20년을 살았지만 제주도도 한번 못 가봤어요. 그 대신 가까운 경주에 자주 갔어요. 남편이 제가 어디 가는 걸 걱정하거든요. 예전에는 러시아에 가족 보러 자주 갔었는데 코로나로 러시아에 못 가서 올해는 여수, 통영, 광주 등에 가봤어요. 기본적으로 새로운 곳에 가는 걸 좋아해서 좋았어요. 가족이 많아서 돈이 많이 드는 것 말고는 괜찮았어요. 다음에는 친구랑 여행 가고 싶어요. 

-러시아와 한국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한국의 삶은 틀에 박혀있다고 생각해요. 매일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한 가지 일을 완벽히 잘 하고, 그래서 발전이 있는 것 지만 융통성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인들은 미래를 위해 사는 것 같아요. 러시아인들은 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로맨티시스트도 많고, 소설가나 음악가가 많은 거 같아요. 또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신경 써요. 그래서 불안감이 느껴져요. 

-배우자 분과는 어떻게 소통하시나요? 

남편은 러시아어를 못해서 한국말로만 소통해요. 연애할 때는 한국어와 영어를 사용했어요. 남편이 러시아어를 크게 좋아하지 않아요. 별로 필요하지 않은 언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남편이 아이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외할머니, 할아버지도 있고, 제가 화나서 얘기할 때는 러시아어로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꼭 배워야 해요. 

-현재의 감정 상태와 삶은 어떤가요? 

육아가 힘들어요.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니까 더 공부하기 싫어하고 매번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게 힘들어요. 교육문제로 힘이 많이 빠져요. 그 밖에는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나요. 다양하게, 건강한 사람들, 우울한 사람들 등등… 외국인 한 부모 가족이나, 미혼모, 혹은 큰 병을 앓다가 돌아가시는 분들의 일 처리 등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어요. 교육청 관련 일도 해요. 러시아 사람들 유입이 많은데 한국말을 잘 하는 사람이 없어서 일이 좀 많아요. 그리고 성격상 한 번 부탁받으면 끝까지 마무리해야 되는 성격이라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집에 가면 또 애들 일 봐줘야 하고요. (웃음)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아이들이 엄마 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 러시아에 가서 한국 식당이나 문화 센터(언어나 음식, 공예 알려주는) 같은 것을 열어보면 어떨까 생각해요. 지금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라 미래에 뭘 할까 생각해 두고 있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러시아에서 가져온 도마와 한국어로 번역이 된 러시아어 사전입니다. 사전은 저한테 늘 도움이 된 책이라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김지우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김지우입니다. 41세이고, 베트남에서 왔어요. 한국에는 2008년 8월에 왔어요.

 -이름 이야기를 해주세요. 

베트남 이름은 파티란이에요. 2018년에 귀화를 하면서 한국 이름을 3만 원 주고 작명소에서 만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남편을 사랑해서 오게 되었어요. 베트남에 있을 때 약사 공부를 하던 중 아르바이트하던 회사에서 남편을 만났어요. 결혼할 때, 부모님이 보수적이셔서 많이 반대를 하셨어요. 그렇지만 제가 남편을 많이 사랑하고, 아이도 생겨서 허락을 해주셨어요.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당시에 두렵긴 했지만 남편을 믿고, 사랑하니까 왔어요. 사실 결혼할 당시에 남편이 이미 베트남에서 일하던 상황이어서 한국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었는데 남편 일 상황이 달라져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어요. 떠나올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가지로 복잡했어요. 새로운 느낌도 있고, ‘언어도 잘 모르는데 한국에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요. 

-두 분이서 소통은 어떻게 하시나요? 

남편이 베트남어를 잘 해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도착해서 언어가 안되니 답답해서 두 달 후부터 다문화 센터에서 어학공부를 시작했어요. 

-한국이 좋은가요? 

한국의 환경을 좋아해요. 대게는 나쁜 사람보다 친절하고 잘해주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아쉬운 것은 베트남 사람들 만큼 정이 많지는 않아요. 베트남 사람들은 주변에 누가 아프면 굉장히 잘 챙겨주거든요. 특히 남편과 대화가 많지 않고, 정이 많지 않아서 외로울 때가 있어요. 

-현재의 감정 상태는 어떤가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지금은 한국어를 더 잘하게 되었는데도 외로워요. 막내가 좀 크면 고국에 자주 왕래하고 싶어요. 

-고국이 그리울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노래 부르고 춤을 춰요. 울컥하고 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 나가서 노래하면 마음이 좀 풀어져요. 

-노래를 어디서 부르시나요? 

한국 가수협회에 가입된 상태예요. 요즘은 트로트를 불러요. 베트남 사람들을 모아서 노래 협회를 만들고 싶은데 아직 둘째가 어려서 외부 활동이 수월치 않아요. 

-약사 공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어렸을 때 고생을 많이 했어요. 8살 때부터 베트남 전통 빵을 밤새 만들어서 시장에서 팔았어요. 1000동에 10개인데도 사람들이 자꾸 깎아서 ‘어떤 일을 하면 사람들이 가격을 깎지 않고 지불할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약사 공부를 시작했어요. 베트남에서는 상황이 어려웠기 때문에 고등학교까지만 나왔고, 그러다 한국에 와서 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현재는 노래하고 춤을 통해 활동을 하고 싶은데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아요. 아직 아이가 어리니까 살림하고, 아이를 돌보라고들 해요. 

-가족들이 바깥 활동을 도와주지 않나요? 

 아침마다 아이들 때문에 정신도 없고, 힘들어서 외출을 해서라도 해소하고 싶은데 남편이 나가는 걸 싫어해요. 시어머니는 원래 그렇지 않았는데 남편이 싫어하니까 응원해 주지 않아요. 사실 우울증이 좀 있어요. 둘째 출산 후에 더 힘들어졌어요. 남편과도 현재 문제가 좀 있어서 부부 심리 상담을 여러 번 해봤지만 잠시 개선됐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요. 이게 3년째예요. 남편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너무 힘들어요. 

-올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별로 없어요. 베트남에 있는 친정가족과도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요. 집에도 문제가 많아서 연락하면 마음이 아프거든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개량한복처럼 현대식으로 만든 베트남의 정통 의상인 아오자이(Áo dài)와 전통 춤 소품입니다.

조이쮠



 *통역사와 함께한 인터뷰는 문어체를 사용하였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조이쮠이다. 32세이고, 대만에서 왔다. 한국에 온 지 2년 좀 더 되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남편과의 결혼으로 한국으로 들어왔다. 캐나다에서 영어 공부하러 가서 만났다. 그래서 초기에는 영어로 소통하다가 지금은 한국어를 배우기 때문에 한국어로 하고, 모르는 단어는 영어로 한다.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불안하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고 기대감도 있었다. 초기 입국 때는 문화와 언어가 달라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지고 있다. 앞으로, 미래에 자녀가 생기면 대만과 한국 두 곳에서 다 교육을 받게 하고 싶다. 대구에 대만 커뮤니티가 있고, 60명 정도의 대만 사람이 있다. 

-고향이 그리울 때 어떻게 하시나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들어갈 수 없지만 이전에는 1년에 2~3번씩 갈 수 있었다. 지금은 영상통화로 가족을 만난다. 그리고 대만 친구들과 만나서 함께 음식을 해먹으며 향수를 해소한다. 

-한국어를 어떻게 배우시나요? 

대만 친구나, 한국 친구를 만나서 한국어 연습을 한다. 이전에 대구 수성구 관광부에서 대만 사람에게 대구 관광을 홍보하려고 대만 사람을 모집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촬영할 때, 알게 된 한국 사람이 중국어를 잘 해서 친구가 되었다. 대만에서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한국어를 조금 배웠었다. 그리고 남편과 결혼 전에 한국어를 조금 연습했다. 결혼 전에 친정 부모님께서 반대는 하지 않으셨지만 걱정을 많이 하셨다. 지금도 여전히 걱정 중이시다. 

-한국에서의 삶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한국의 장점은 날씨가 좋다. 대만은 너무 덥다. 어려운 점은 존댓말이 어렵다. 처음 결혼 후 1년 동안 시댁에서 살았다. 그때 한국 문화를 많이 배웠다. 

-대만과 한국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대만에서는 어디든 원하는 대로 갈 수 있었고, 직업도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언어가 부족해서 어디 가기가 쉽지 않다. 대만에서 호텔 프런트에서 일했다. 한국에서는 일을 하지 않으니까 소속감도 없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공간이 어디인가요? 

한국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곳은 아직 없다. 집이 제일 좋다. 보통 새로운 곳에 가야할 때는 남편과 동행한다. 혼자 갈 수 있는 언어 실력이지만 혼자 가기 두려워서 피한다. 

-한국에서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아직 한국 사람을 많이 만나보지 못해서인지 외국인으로 차별 대우를 받은 경험은 거의 없다. 

-영주권을 취득하고 싶은가요? 

당장은 아니지만 영주권 취득할 계획이 있다. 

-올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현재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한국어를 잘 하고 싶다. 한국어를 잘 하게 되면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잠시 공부하기 싫어진다. 그리고 임신 계획이 있다.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요즘 드는 생각이 한국 친구와 함께, 대만 디저트 카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결혼 전에는 요리를 안 해서 못했었는데 지금은 하다 보니 관심이 생겼다. 

-집에서 주로 한국요리를 해 드시나요? 

한국 음식이 매워서 조금 안 맞는 편이지만 보통 집에서 남편분과 한국 음식 위주로 한다. 가끔 혼자 대만 음식 해 먹는다. 대구에 대만 식당은 없다. 중국 음식과 비슷하지만 대만 음식을 찾을 순 없다. 대신 대만에 계신 엄마가 음식을 보내준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책이다. 제목은 “친절함에도 선이 있어야 한다”이다. 인간관계에 관한 책이다. 외국에서 중국어 책을 읽으면 개인적으로 마음이 편하다. 한국에서 인간관계에 도움이 될까 봐 이 책을 가져왔다. 이 책은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용감하게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줄 알아야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내용이다

김서현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제 이름은 김서현입니다. 28세이고, 캄보디아에서 왔어요. 한국에 온 지는 8년 됐어요. 

-한국 이름은 어떻게 만드셨나요? 

남편이 작명소에 가서 만들어 주었어요. 

-본명은 뭔가요? 포우스레이노입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고향에서 대학생이었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결혼을 선택했어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솔직히 말도 안 통해서 많이 힘들었어요. 이모 소개로 남편을 만나서 남편이 캄보디아로 들어와서 결혼식하고 바로 한국으로 이주했어요. 어릴 때라 공부도 계속하고 싶고, 다시 집에 가고 싶었어요. 한국에 온 지 3개월 만에 첫아이가 생겨서 아이 낳고, 환경도 낯설어서 쉽지 않았어요. 이모가 한국에 계셨지만 늘 같이 있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둘째 아이 낳고 나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말이 안 통해서 혼자 다닐 수도 없어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한국에서 살기 좋아요. 남편 도움 없이도 혼자 간단한 일도 처리할 수 있어서 좋아요. 

-현재의 감정 상태는 어떤가요? 

이전에 비해 많이 익숙하고 안정적이에요. 아이 교육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해요. 남편은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100프로 남편에게 의지할 수 없어서 제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아이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래에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전혀 없어요. (웃음) 

-이모님은 아직 한국에 계시나요? 

이모뿐 아니라 부모님, 동생과 다른 친척분들도 많이 한국에 들어와 계세요. 그래서 더 캄보디아로 돌아갈 일이 없는 것 같아요. 

 -가족이 다 한국에 와 있어도 고국이 그리울 때가 있나요? 

고향 설날 때 그리워요. 고향에서는 명절에 동네에서 잔치 같은 거 하면서 춤도 추고 음식도 같이 먹고 같이 어울리는 시간이 있는데, 한국은 차례 지내고 헤어지니까 아쉬워요. 

-한국 영주권 취득은 하셨나요? 

한국 국적과 캄보디아 국적을 이중으로 가지고 있어요 

-대구에 캄보디아 커뮤니티가 있나요? 

있어요. 종종 정보를 교환해요. 

 -한국어는 어떻게 배우시나요? 

다문화 센터를 통해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어요. 한국어 공부가 쉽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어린이집 앞 공원에서 저희 아이가 놀고 있었어요. 아이가 거기 있는 어린애가 귀여워서 ‘이쁘다’ 하는데, 그 아이 엄마가 와서 자기 아이와 놀지 말라고 해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요즘도 그런 빈도가 있나요? 

아직 좀 있어요. 애들 학교 방문할 때도 애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괜히 눈치 보고 주변을 살피게 돼요. 마음을 당당하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잘되지 않아요. 제가 욕심이 많은 편이라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어떠한 걸 하고 싶다고 하면 주변에서 ‘ 한국인도 하기 힘든데 외국인인 네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말을 종종 들으면 힘들어요. 한국인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인들도 종종 그렇게 말해요. 그게 좀 그랬어요. 

-미래에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내년에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어요. 전공은 사회복지사 쪽으로 진학하던지 아니면 경찰 공무원 쪽으로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캄보디아 고등학교 성적표를 떼 와서 입학원서를 내면 돼요. 지금은 미리 서류 준비 중이에요. 그런데 현재 고민이 있어요. 파티마 병원 약국 통역 일 제안이 들어왔는데, 애가 어리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싶어서 그 제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회 활동을 해보니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느껴요. 그래서 좀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열심히 사는 거 같아서 저도 열심히 살고 싶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이 그려진 티셔츠와 전통 치마입니다. 캄보디아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가져왔습니다

추해화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추해화입니다. 44세 78년생이고, 중국에서 왔습니다. 한국에는 2001년에 왔어요. 20년 되었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저는 집에서 큰 딸이에요. 중국에서 잘 살아도 부모님에게 별 도움이 못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한국에서 남편이 중국으로 왔어요. 중국에서 만나서 결혼하고 한국으로 왔어요.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남편이 중국에 왔을 때 소개로 만나게 되었어요. 연애도 안 해보고 해서 잘 몰랐어요. 남편이랑 전화 통화를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친해졌어요 

-떠나올 때의 기분이 어땠나요? 

나이도 어리고 해서 느낌이 별로 없었는데 엄마가 저를 버스에 태우고, 혼자 내릴 때 쓸쓸해 했어요. 언어가 됐지만 억양이 달라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어요. 식당에 가도 제 스스로가 외국인이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한두 달 지나니 외로웠어요. 우울증인 것 같았어요. 비행기만 보면 ‘어디로 가는 거지?’ 이런 생각하게 되었어요. 엄마 아빠가 한국에 온 이후로는 괜찮아졌어요. 아버지는 한국에서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중국으로 돌아가셨어요. 친척들이 한국에 살고는 있지만 멀리 떨어져 살아요. 

-고국이 그리운가요? 

나이가 드니,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한국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서의 생활이 적응이 돼서 중국에서는 못살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나이가 40이 넘고, 다른 피붙이가 없으니 중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 20살 된 아들이 있지만 중국에 가고 싶어요. 떠나온 세월이 길어서 ‘바뀐 중국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해요. 국적도 한국이라 중국에서 장기 체류도 못하고, 이런저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아플 때 고국이 많이 생각나요. 스트레스 받으면 이유 없이 아파요. 티브이 보면서 감정이입을 많이 해요. 

-고국이 생각날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엄마랑 화상 통화 해요. 예전에는 스트레스 받으면 쇼핑했어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밖에 못 나가지만요. 

-떠나올 때 가져온 물건이 있나요? 

어릴 때 왔기 때문에 챙길 생각을 안 했어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갔을 때 제가 대학교에 들어갔고, 다문화홍보강사를 했어요. 고국을 알린다는 생각에 행복했어요. 그때 입었던 옷을 생각했어요.

 -대구에 고국 공동체가 있나요? 

대구에 조선족 커뮤니티는 없어요. 마음이 맞으면 소통해요. 나라는 따지지 않아요. 

-한국에서의 현재의 삶은 어떤가요? 

다문화 센터에서 이중언어 코치를 하고 있어요. 방통대에서 중어중문학과 전공했어요. 힘들었지만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 덕분에 졸업했어요. 자원봉사 일을 10년 정도 했어요. 중국어를 가르치는 것 등이요. 지금은 청소년 지도 협의회에서 일해요. 일하고 나면 뿌듯하고 좋아요. 

-한국이 좋은가요? 

좋은 면도 있고, 힘들기도 해요. 중국에서는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게 익숙한데 여기서는 조금 차이가 나요. -한국에 오신 것을 후회하시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중국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초등학교 수업에 사용할 때 만든 지도입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다문화홍보강사 일을 하게 되면서 직접 바느질해서 만든 작품이라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습니다

김 릴리안



 *영어 인터뷰 번역본은 문어체를 사용했습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김릴리이다. 결혼해서 2013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한국 남자와의 깊은 인연이 생겨서 한국에 왔다. 

-후회한 적은 없나요? 

후회는 하지 않는다. 

-고국을 떠나올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처음 떠나올 때 기대감에 흥분했다. 

-출국 전날 기분은 어땠나요? 

막상 여행 전날 긴장을 풀려서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땠나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날씨가 너무 춥고,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음식은 맛이 전혀 없었고, 인파에 너무 무서웠고, 남편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큰 실수를 할까 봐 너무 무서웠다. 

-현재의 감정 상태와 삶은 어떤가요? 

지금은 요리와 기후 등에 대한 몇 가지 관심사를 발견했다. 여전히 겨울이 싫지만 특별한 제약 없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예민한 편인데 감정적으로 닫힌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으신가요? 

아니다. 지금은 두 나라 사이에서 결정해야 할 생각이 없다.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두 나라의 장점을 모두 누리고 싶다. 

-언젠가 브라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그렇다, 브라질로 돌아가서 다른 나라 여행을 하고 싶다. 

-한국의 영주권을 받고 싶으신가요? 

이미 한국인이다. 

-브라질의 시민권을 포기하실 건가요? 

아니다. 브라질 사람으로, 한국인으로 계속 살아갈 거다. 두 나라를 사랑하는데 왜 굳이 자신의 국적을 포기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고국이 가장 생각나는 때는 언제인가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브라질 소식을 자주 보는데 브라질을 위한 올바른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소속감을 많이 느끼시나요? 

한국에 있는 것이 집처럼 느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2019년부터 한국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브라질에서 했던 것처럼 집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들으며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 한국에서도 나만의 즐거운 습관을 만들며 조금씩 문제를 해결하며 지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 당시 한국 귀화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단순한 문서 외에 이 나라가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었는지 깨달았다. 상상치도 못했던 아이, 남편, 양질의 교육, 멋진 친구들, 음식, 일 등을 얻었더라. 그 때서야 이 나라가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깨달았다. 

-브라질과 한국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큰 차이점은 의심할 여지 없이 기후와 과일, 자연 및 해변이다. 피부 색이나 태도 등, 모든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반대이다. 닮은 것은 글쎄, 자동차와 남자들인 것 같다. 지구 상에서 서로의 위치가 끝과 끝에 있는 것처럼 공통점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두 나라가 거의 별 개의 두 행성 같다.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졸업장이다. 내게 개인적인 자부심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 가져온 것은 직업과 학업이었다. 또 하나의 물건은 해먹인데 브라질의 전통적인 물건이다. 해먹에 누워 자연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박지현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박지현입니다. 베트남에서 왔고, 34살입니다. 한국에는 15년째 살고 있어요.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나요? 

2012년에 국적취득 후 개명했어요. 남편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고등학교 자퇴 후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옷가게에서 일을 했었어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왔었는데 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꼈어요. 한국 드라마도 많이 봤어요. 그래서 한국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드라마에서 눈 내리는 모습 보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지인을 통해서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고국은 떠나올 때 기분이 어땠나요? 

어리고 철이 없어서 두려움보다 신나고 설렜어요. 비자 받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막상 떠나올 때는 좋았어요. 겨울에 들어와서 한두 달 좋았다가 바로 임신하고, 입덧과 언어와 문화 차이로 몇 년 힘들었는데 다행히 시어머니와 남편이 힘이 많이 되어 주셔서 지금껏 잘 살고 있어요.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떠신가요? 

외국에서 사는 일이 많이 힘들어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잘 해주었지만 힘든 점도 많았어요. 사회에 적응하기도 힘들었고, 아이들 교육문제도 힘들었어요. 그러다 한국 엄마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고 저의 의견대로 하기로 했어요. 필요성을 느끼면 할 것 같아요. 뒤쳐칠까 걱정이 들긴 해요. 

-현재의 감정 상태와 삶은 어떤가요? 

너무 신기해요. 어릴 때는 공부하는 게 너무 싫고, 힘들어했었는데 한국에 와서 새로운 기회가 생긴 거 같아요. 어릴 때는 공부에 대한 애정과 꿈이 없었는데 한국에 와서 2018년쯤, 서른 살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어느 날, 이렇게 계속 아르바이트하며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 중앙 경찰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고졸 검정고시부터 시작하고, 경찰서 통역 요원으로 등록해서 공부하면서 통역 일을 했어요. 3번째 시험에 합격했어요. 지금도 너무 믿기지 않을 만큼 신기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베트남에서 가져온 휴대폰 거치대와 가방입니다

왕정한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왕정한입니다. 중국에서 왔고, 34살입니다. 한국에 2013년에 왔어요.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셨나요? 

중국에서 대학 졸업 후 중국어 강사로 일을 했었는데 그때 지금의 신랑을 만났어요. 그때 신랑이 제 학생이었거든요. 근데 신랑의 유학 기간이 끝나고, 저도 외국 생활이 궁금하기도 해서 오게 됐어요. 사실 한국에는 2012년도에 대학 졸업 여행으로 와 봤었어요. 당시에 여행도 재미있었고, 한국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아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았어요. 공항에서 어떤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는데 지하철로 동행해 주시면서 제가 알던 언니 집까지 데려다주셨어요. 심지어 용돈으로 10만 원도 주셨어요. 정말 친절한 아저씨여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데 이젠 찾을 수가 없네요. 그래서 그때 여행 경험도 너무 좋아서 오기로 결심을 하게 됐어요. 중국어 강사 일도 계속하고 싶었고요. 당시에 자신감이 넘쳤어요. 그렇게 한국에 와서 일을 하다가 1년 정도 지난 후에 지금의 신랑과 결혼을 했어요. 

-한국어는 어떻게 배우게 되셨나요? 

예전부터 한국어가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여자들이 부드럽게 말하는 것도 좋았고요. 처음에 한국에 와서는 중국어 강의가 많아서 따로 배울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상생활하면서 혼자 배우다가 나중에 결혼 후에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좀 들었어요. 

-배우자 분과는 어느 언어로 대화하시나요? 

중국어랑 한국어 다 써요. 

-아이가 있으신가요? 

7살 아이가 있어요. 

-아이도 중국어를 하나요? 

중국어를 잘은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해요.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떠신가요? 

처음에는 경험 삼아 한국에 온 거라 이렇게 오래 있게 될지 몰랐어요. 당시에는 신랑과 연애만 하는 사이였으니까요.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서 행복해요. 

-중국에 계신 가족들은 그립지 않나요? 

인터넷 덕분에 영상통화가 잘 되니까 괜찮아요. 전에는 1년에 두세 번씩 다녀오곤 했었어요. 

-한국 사람과의 결혼을 가족이 반대하진 않았나요? 

부모님께서 반대하셨어요. 제가 과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한국은 과일이 비싸다고 하시면서 겁주셨어요. ‘너 한국으로 시집가면 딸기 엉덩이도 못 먹는다.’라고 하셨었어요. 사실 중국에서 살 땐 딸기를 박스째로 샀었거든요. 근데 확실히 한국은 값도 비싸고, 맛도 달랐어요. 그리고 시아버님도 반대하셨었어요. 하나뿐인 성공한 아들이 외국인과 결혼한다고 하니까 싫어하셨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되게 좋아하세요.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고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많이 없어요. 아직 나이도 어리고, 당장 내일이라도 갈 수 있으니까요. 혹시 신랑이 가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갈 수는 있을 것 같아요. -향수병도 없으신가요? 향수병 없어요. 여기 생활에 만족해요. 

-중국과 한국의 일상 중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먹는 거 빼고는 큰 차이가 없어요. 음식은 적응이 힘들었어요. 한국에 와서 초반에 살이 10킬로가 빠졌었었어요. 당시에 40킬로뿐이 안됐었어요. 입맛에도 너무 안 맞고, 당시에는 너무 비싸게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당시 월급이 30만 원밖에 안됐었거든요. 인턴으로 일을 하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계속 가격을 비교하고 사 먹다 보니까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그 당시에 울산에 살았는데 학원 원장님께서 김치도 주시고, 음식을 챙겨주셨었어요. 지금은 중국음식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먹어요. 제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어서 집에서도 중국식으로 먹어요. 아이는 한식으로 먹고요. 

-한국에서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아뇨. 없어요.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외국인이라고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고요. 편해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어머님들도 반찬도 많이 챙겨주시고요. 김치도 매년 담가주시고요.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저는 감사한 마음이 많아요. 그리고 보통은 제가 입다물고 있으면 외국인이라는 걸 몰라요. 그리고 알았어도 크게 차별을 받은 적은 없었어요. 다들 친절했거든요. 딱 한 번? 세탁소에 운동화를 맡기러 갔는데 이사하기 전 세탁소는 한 켤레에 3500원이었는데 새로 이사 온 곳 세탁소에서는 5000원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 비싸네요, 그래도 해주세요.’ 했더니 세탁소 주인 할아버지께서 ‘한 짝에 5000원’이라고 하셔서 그냥 왔었어요. 딱히 어디 가격표가 있는 게 아니라 확인할 길도 없고, 화도 나서 그냥 나왔어요. 

-영주권이 있으신가요? 

네, 영주권 있어요. 

-한국에서의 생활 중 힘든 점이 있나요? 

한국 존댓말 너무 힘들어요. 시어머니한테도 ‘카드 가져와봐라’ 이렇게 말했었어요. 습관이 안돼서요. 제가 혼자서 공부할 때 한국어 교재가 반말로 되어있었거든요. ‘안녕’, ‘미안해’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버릇이 없다는 오해를 받았어요. 사실 저희도 억울해요. 중국어엔 존댓말이 없으니까요. 중국에선 나이 관계없이 다 친구처럼 이야기하니까요. 또 중국에선 대답할 때 ‘네’가 없어서 제가 ‘엉-’이렇게 대답하니까 신랑이 ‘네’ 해야 되는 거라고 가르쳐줬었어요. 시부모님은 이제 적응이 되셨어요. 얼마 전엔 시아버지께서 시어머니께 좋은 선물을 사드렸는데 제가 장난으로 ‘아버지 사람 됐네’라고 말하고 같이 웃었어요. 그러고는 시아버지께서 ‘응, 맞아. 아빠 이제 사람 될 거야’라고 답하셨어요. 그래서 여전히 말하는 대상에 따라 쓸 수 있고, 없는 표현을 구분하는 게 어려워요. 

-자녀 교육문제로 문화 차이를 많이 느끼시나요? 

아이가 7살이라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제가 한국 역사를 잘 몰라서 곤란할 때가 있어요. 중국에서는 조부모님들이 아이를 많이 봐주는데 여기선 혼자 해야 하니까 그게 좀 힘들긴 한데 그래도 부모가 돌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희 아이가 할머니 집에만 가면 치킨을 찾거든요. 집에서는 잘 안 시켜주니까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해달라는 거 다 해주니까요. 그럴 때마다 아이는 부모가 직접 키우는 게 맞는다는 생각을 해요. 

-올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특별한 바람은 없어요. 코로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둘째를 낳고 싶어요. 둘째 낳고 한 3년 정도 쉬다가 다시 중국어를 가르칠 계획이 있어요. 첫째 낳았을 때는 혼자서 해야 되니까 너무 힘들어서 생각을 못 했는데 이제는 첫째가 많이 커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피리와 보물주머니 그리고 중국어 학습책입니다. 피리는 중학교 다닐 때 음악 선생님께서 선물해 주셨는데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고, 보물주머니는 어릴 적부터 거스름돈을 조금씩 넣어 보관해 온 주머니입니다. 그리고 중국어 학습책은 처음으로 한국에서 중국어를 가르칠 때 사용한 책입니다

윤알렉산드라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윤알렉산드라입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왔고, 나이는 50이에요.
한국에 온 지는 5년 되었고, 결혼 한 지는 4년 되었어요. 고려인 3세예요.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카자흐스탄에서 원래 돈을 잘 벌었어요. 그런데 2015년에 나라에 경제 위기가 와서 돈을 많이 잃게 되고, 아들 대학 교육비를 벌려고 한국으로 왔어요. 당시에는 문제 해결을 하려고 온 것이라 결혼해서 살게 될지는 몰랐어요.

-배우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지인 소개로 만났어요. 만나자마자 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스스로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느낌이 들어서 놀랐어요.
당시 한국에 왔을 때 46살에 와서 결혼을 할 수 없을 줄 알았어요.
주변 몇몇 한국 사람들이 70대 남자와 결혼할 수도 있을 거라고 해서 기도를 많이 했어요. 위대한 힘에게 기도하고, 수첩에 배우자 상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 적고 기도했어요.
예를 들어. 나이는 몇 살, 경제적인 능력, 내 아이를 존중해 줄 사람 등등 20개 넘게 적었고, 결혼 후 그 수첩을 발견했을 때 거의 다 해당돼서 놀라웠어요. 남편은 저보다 5살 많아요.
결혼 후에는 남편이 초반에 저의 한계를 알기 위해 힘들게 했었어요. 힘들었지만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참았어요. 그 당시에 친구가 많이 필요했어요.
남편은 불 성향이고 저는 물 성향이라 결국 물이 불을 이겨요. 그러니 당신이 결국 나를 이길 거라고 남편이 말했어요. ‘당신이 물이라 나를 물처럼 안아준다. 당신이 나보다 더 강하다.’라고 말했어요. 지금은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느낌은 어떠셨나요?

일하러 오기 전에 한국에 네 번 정도 한국에 와 본 적 있었어요.
한국 문화원에서 주최한 한국 세미나를 통해 한국에 온 적 있었고, 여행으로 두어 번 더 온 적이 있었어요. 처음 한국 왔을 때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느껴진 뜨거운 공기가 사막 같았어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저에게 친절했어요. 그래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았어요.
평소 카자흐스탄에서 알던 한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연락해’ 하는 말이 약속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에 와서 다 연락해 봤는데 그게 약속이 아니라 예의상 하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당시에 우연히 알게 된 한국 남자분이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비자 받을 때 주소가 필요했는데 주소도 빌려주고 출입국 사무소도 함께 가주고 밥도 사주고 그랬어요. 흑심이 있던 건 아니고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라고 진심 호의로 도와주신 분이었어요.

-대구에 카자흐스탄 커뮤니티가 있나요?

없어요.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두세 명뿐이에요. 거리도 가깝지 않아서 교류하지 않아요. 동향이라서 만나기보다는 경제력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교류하게 되는 거 같아요. 러시아 사람들과 문화도 비슷하고 언어도 카자흐스탄어와 우즈베키스탄어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러시아 사람들과 비슷해요. 그런데 이민자 여성들은 대체로 너무 젊어요. 저와 나이차가 커서 관심사가 달라요. 그리고 대체로 한국 남편들이 부인이 타인으로 인해 나쁜 영향을 받을까 걱정해서 외부와의 교류를 염려해요. 저도 결혼 전에 몇몇 한국 남자들이 아빠처럼 자기를믿어라 하고는 속인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사람 조심하라고 해요. 각자 다 목적이 있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고국이 그리울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남편과 우즈베키스탄 식당을 찾아다녀요. 와룡시장 안에 아시안 마켓에서 식료품을 구할 수 있어요. 남편이 저를 위해 러시아 음식을 많이 주문해 줘요.

-한국이 좋으신가요?

한국은 대체로 좋아요. 여름 날씨 빼고.
카자흐스탄에서는 여름에 바닷가에 자주 갔는데 한국은 카자흐스탄의 바다보다 파도가 심해서 바다 수영하기 무서워요.

-외국인이라 차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저 스스로 느끼기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남편과 함께 시장에 다닐 때 불친절하면 남편이 다시는 가지 말라고 해요.
부당한 일을 당하면 남편이 바로 가서 해결해 줘요.
남편은 내가 버스도 잘 못 탄다고 생각해요. 실수를 몇 번 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나 봐요.
지하철이 낯설어서 실수한 적 있어요. 택시 타면 기사와 소통이 쉽지 않아요.

-한국 영주권이 있으신가요?

영주권을 받고 싶어요. 현재 결혼할 때 받은 F4 비자가 있는데 영주권 취득을 하려면 F6 비자를 받아야 해요. 그러려면 혼인 신고서를 가지고 카자흐스탄에 가서 서류를 신청해야 해요.
아무튼 현재는 영주권 받으려면 서류 정리를 해야 해요.
남편이 미래에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본국 국적을 포기하진 않을 예정이에요.

-올해 계획이 있으신가요?

처음에 한국에 와서는 언어가 잘되지 않아서 식당 일 같은 걸 했어요.
(결혼 이후로는) 남편이 제 외부 활동에 걱정이 많아서 다른 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요.
아직 언어가 잘 안돼서 아이가 된 거 같아요.
그렇지만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함께 뭔가를 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김치를 함께 담근다든가, 그런 활동을 아줌마들과 하고 싶어요. 아줌마들과 얘기하면 문법 같은 거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남편이 대체로 집에 있고, 외출하기가 쉽지 않아서 동네 아줌마들과도 교류가 쉽지는 않아요.
집에 고양이도 있고, 코로나 때문에 외로울까봐 남편이 식물을 많이 사다 줬어요. 그래서 식물도 케어해야 하고 한국어도 열심히 배워야 해요. 그래서 하루가 빨리 지나가요. 그리고 남편과 토요일마다 차 타고 작은 여행을 해요. 토요일은 가족의 날이에요.
남편 자녀인 25살 큰 딸이 대학을 졸업해서 따로 살고, 아들과 함께 살아요. 아들은 곧 군대에 가야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아요. 제 아들은 카자흐스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하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카자흐스탄에 간 게 3년 전이에요. 내년 여름에 갈 계획이에요. 작년 6월에 가려고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했어요.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저는 한국에서 오래도록 사는 게 좋은데 남편은 애들이 자라고 나면 외국에서 여행하면서 살아보고 싶어 해요.

-오브제 소개를 해주세요.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져온 모자와 러시아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 세트입니다.
키르기스스탄 전통 모자는 펠트로 만들어졌고, 여름에 써도 덥지 않고 겨울에 쓰면 따뜻합니다. 인형 세트에는 낙타 인형이 있는데 키르기스스탄에서 낙타는 부의 상징입니다.
낙타를 소유하는 것을 번영의 표시로 여겼습니다.
오랜 세월 유목민의 생활에서 낙타는 주요 운송수단이었고 삶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동물입니다. 


Thursday, November 4, 2021

장거리대화 개인전 - "나의 벗, 너의 오브제"

 



«나의벗, 너의 오브제»

2021년 11월 8일 - 19일 :
<송현1동 행정복지센터>
대구시 달서구 중흥로8길 41, 평일 오전 9 - 오후 6시
<엘모카페>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66, 매일 오전10 - 오후 6시

2021년 11월 15일 - 27일 :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내 053창업카페>
대구시 북구 호암로 51, 평일 오전 10 - 오후 10시

전시기획: 장거리 대화 - 윤혜경, 정효정, 현지성

이 프로젝트는 «2021 대구문화 재단 신규 단체 활동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전시 참여자 모집 및 인터뷰 진행은 달서구 건강가정. 다문화 가족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나의벗, 너의 오브제» 소개글
장거리대화 팀의 공동 프로젝트인 «나의벗, 너의 오브제»는 유학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며 만나게 된 세 작가가 이방인으로서의 경험과 생각들을 토대로 대구지역의 이주여성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전시와 출판을 통해서 보이고자 하는데서 출발하였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같은 지역에 살지만 무관심 혹은 편견으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지역사회에 드러내고자 하며 이주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들의 더욱 안정적인 정착을 응원하고자 하였다. 한편 지역민들에게는 전시 관람을 통해 이주여성들의 삶을 발견하고 간접적인 만남을 통해 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생활공간에서의 전시를 통해 지역민들과 좀 더 밀접한 교류와 소통이 이루어지고, 예술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2021년 여름, 장거리대화 팀은 달서구 건강가정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약 스무명의 이주여성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들의 주요 생활공간 속에서 각자가 모국을 떠나올 때 가져온 소중한 물건과 함께 사진 촬영을 진행하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재조명 하는 시간이 되었으며,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그 중 어느 역할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길 응원하게 되었다. 한편 프랑스에 거주중인 현지성 작가는 프랑스에 정착한 한국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토대로 비디오-퍼포먼스를 제작하여 한국과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주민 여성들의 간접적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나의벗, 너의 오브제» 전시를 보러오는 관객에게도 우리가 몰랐던, 혹은 무관심했던 이주여성들과의 만남과 대화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주민들을 마주했을 때 스스로의 태도나 생각에 대해 자문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타인은 우리의 거울이다. 이방인과 이주민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과 한국의 특징은 우리가 스스로 보지 못하는 우리의 얼굴이다. 자크 데리다는 "이방인은 첫 물음을 제기하면서 나를 문제선상에 올려놓는 사람이다" 라고 했다. 다문화 정책과 제도를 섬세하게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제도는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운영해나가는 것이다.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배척, 타문화권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불신이 달라지지 않으면 포용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라 할 수 없다. 이해하려면 알아야 한다. «나의벗, 너의 오브제» 전시가 타인을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현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성미 (시인)

*«나의벗, 너의 오브제» 평론글에서 발췌